'2012/02'에 해당되는 글 20건

  1. 종속변수 2012/02/29
  2. 2012/02/29
  3.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2012/02/27
  4. 잠시 비웁니다 2012/02/22
  5. 전망 2012/02/21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얼어붙은 세상이 보인다. 그의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날, 그의 제안이 없는 날,
그와 안 좋았던 날, 세상은 갑자기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나는 수족관을 바라보는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세상은 히스테릭한 물건으로 가득차 있으며,
내가 바라보거나 만지는 모든 것들은 나에 대해 적대적이다.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슬픔에 빠졌을 때,
세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하루가 죽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조용한 편지함. 답장이 없는 새벽.
들리지 않는 목소리. 그 달콤한 슬픔은, 이 세상에 온전히 나 하나만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얼어붙은 진실, 잠시 망각하고 있던 진실이 고개를 드는 순간, 사랑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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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오직 그의 신호로만 가득 차 있고, 나는 신탁처럼 그의 신호를 기다린다는 것.
사랑도, 내 삶도 오직 그라는 대상의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이 놀라운 전환이야말로 우리가 사랑의 가능성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희망과 환희는 물론 고통도, 슬픔도, 불행도 모두 사랑의 연료일뿐.
생을 한 점 남김없이 밑바닥이 보일 때까지 모두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러므로 무대가 사라진 뒤에도 그로부터 결코 헤어날 수 없는 것.








2012/02/29 17:25 2012/02/29 17:25

from 견고한 성, 일상이야기 2012/02/29 13:25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있어도
춥지 않다
창문의 무늬를 그리는 햇빛,
눈으로도 느끼는 그 노랑의 따스한 온도,
봄이구나.








2012/02/29 13:25 2012/02/29 13:25

내가 사랑하지 못했던 우리 아버지. 최근에 나는 그의 꿈을 자주 꾼다. 내 꿈 속에서 아버지는
트랑의 집에 있다. 나를 기다린다. 내게서 뭔가를 기대한다. 돌아가실 때의 그 나이.
그런데 나는 지금 내 나이 그대로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이가 똑같다. 쉰 세 살. 우리 단 두 사람뿐이다.
아버지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어색해진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싸울 때 어린아이 적 내가 보았던 그 장면이 또 시작될까봐 겁이 난다.

아버지는 기다린다. 내게 뭔가를 기대한다. 나를 믿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버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 모르탱의 집은 허물어졌다. 르 테이욀의 집은 허물어졌다.
트랑의 집은 팔려버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누이가 죽었다. 나는 산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 그들 모두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  
 - 알랭 레몽,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김화영 번역, 현대문학, 2001) 중에서



읽고 나서, 이것이 소설이었구나 알게 되는 책들이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도 몰랐고, 읽는 와중에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읽은 후 책에 대한 정보를 추가로 찾아보고서야 이 책이 소설이었구나, 소설의 형식으로
쓰여진 글임을 알게 됐다. 우리 식의 규정은 소설이겠으나, 실제로는 논픽션의 상대 개념인 픽션인 것이겠지.
사실 이야기란 어떤 것이든 재구성된다는 측면에서, 논픽션과 픽션 사이의 벽은 아주 얇다고도 할 수 있다.
알랭 레몽의 삶을 출판사의 설명 이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이 이야기를 나로서는 거의 논픽션으로 읽었다.
픽션이라고 하기에는, 소설이라기엔 드라마의 질곡과 구심점이 약한 산문이다. 그러나 이걸 온전한 소설로
읽지 않는다면, 우리는 독자라기보다 청자의 입장에서, 행간에 묻어있는 저자의 애틋한 감정을 낮아지고
높아지는 목소리의 울림처럼 하나하나 뚜렷하게 헤아릴 수 있다. 대단한 사건도 없이 이야기에 몰두하게
만드는 힘은 그 자신 잃어버린 행복에 대한 강렬한 상실감, 과거를 추체험해 부모의 삶을 이해하고자 했던
속깊은 진정성에서 비롯했으리라.

세상은 모두 흘러간다. 전쟁은 끝나고, 집은 허물어지고, 사람들은 이별한다. 누군가는 죽고, 아름다움은
빛이 바랜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폐허로, 없음으로만 전락해 버리는 건 아니다. 무언가를 붙잡고 산다는 일의
덧없음과 더불어 오는 아주 특별한 기적, 알랭 레몽이 건져낸 것은 허무가 아니라 삶의 의미였다.
이 책의 제목은 그래서 아주 역설적으로 읽힌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결국엔 끝날 것이므로
모두가 허망한 삶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래서 더더욱 낱낱이 행복했던 시간들이라는 것.



2012/02/27 20:46 2012/02/27 20:46

멀리 다녀옵니다. 전화 연락도 못 받을 거에요.
다음주쯤 다시 뵙죠.
푸근한 한 주 되시길.





2012/02/22 08:12 2012/02/22 08:12

전망

from 견고한 성, 일상이야기 2012/02/21 11:56

산이 혹독하다 느껴지는 것은 결국 다리의 근육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게으른 시간을 산이 바랬던 게 아니라 내가 바랬던 거다.
흔히 우리는 '재정비'를 말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을 욕망하지만
그런 시간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파르게 버티고 서서 갈 수 있는 곳까지 나아가는 것만이
내가 과거를 반성하고 현실을 인정하며 내일을 아우르는 일이다.
닿을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밀고 나가야 한다.
전망은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아니라 몸이 보여주는 한계의 풍경.
나는 지금껏 보아오지 않은 풍경을 아주 간절히 보고자 할 뿐.









 



2012/02/21 11:56 2012/02/21 1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