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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5편, "마지막 풍경", 남고사와 남고산성편 (2) 2012/05/16
  2. 겹눈 2012/05/15
  3. 반면교사 2012/05/14
  4. 일부 2012/05/13
  5. 4년 전과 지금 2012/05/11

진보, 라는 이름이 가장 더럽혀진 지금
다시 떠올려 보는 그 이름, 광주 5.18.

꼬뮨을 생각합니다.
희생을 생각합니다.











2012/05/18 00:01 2012/05/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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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영화제에서 놀다오느라 업데이트가 늦어졌네요.

연재중인 전주 이야기, 지난 번, 동고산성과 동고사에 이어 5편입니다.
이번에는 전주의 남쪽, 남고사와 남고산성 이야기에요.

이 카테고리 글은 딱 연재중인 글 한 편 씩만 보여드리는 것 아시죠?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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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美路] 남고사와 남고산성편



마지막 풍경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너를 잃고 목어(木魚)처럼 속이 쿵쾅거리던 날, 남고사를 찾는다. 외롭고 높다란 산, 고덕산 산줄기에서 잠시 헤매다 도로 내려와 마을 어귀에서 택시를 잡았다. 차는 곧바로 중턱을 휘돌더니 끝모르게 가파른 비탈길을 달렸다. 뒷좌석에서 저도 모르게 보조손잡이를 꽉 움켜쥘 정도로 위태롭게 경사진 험로였다.

  성문터와 연못을 지나, 천왕문 앞에 내려준 택시는 차를 돌려 내려가고, 나는 전주 시내가 환히 내려다 보이는 풍광 앞에서 잠깐 서 있었다. 절은 굽이치면서 전각을 펼쳐 불사와 산과 빛이 중첩하는 환상을 먼저 내보이고는, 이윽고 꽃창살 문을 열어 아련한 미소를 흘렸다.

  불당을 하나하나 돌아보는 동안 인적은 없었는데, 나는 왠지 누군가가 자꾸 뒤에 숨는 것 같아 몇 번이나 침을 삼켰다. 절 뒤편은 다시 깎아지른 산등성이, 그 깊은 속에는 옛 적의 산성. 쓰러진 나뭇가지를 지팡이삼아 올라 석벽을 따라 오래 걸으며 천 번, 만 번, 억 번의 정경을 보았더랬다. 그렇지만 그 모든 풍경이 딱 하나, 단 한 사람을 비추는 것만 같았던 건 미망이었을까 섬망이었을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가운데, 마침내 절벽 끄트머리인 옛 망루에 서서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증명할 수 있는 건 내 자신뿐, 너는 아니었고 우리는 서로 관계맺을 따름이지 내가 너이며, 네가 나일 수는 없는 건 아니었을까. 바람이 솔숲을 뒤흔들고 옷자락을 흩날리며 심술궂게 굴 때, 나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흘러내린 건 먼지때문일뿐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고 항변했지만 들어줄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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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에서 올려다 보면 산은 얼마나 푸근하고 온화해 보이는가. 이렇게나 낮은 전주의 산들도 막상 올라보면, 깊은 골짜기와 시퍼렇게 날선 능선을 품고 있다. 정상에 서 본 이들만이 하산을 선언할 자격이 있다. 나는 과연 끝에 도착했던가. 우리는 서로 볼 것을, 볼 장을 다 보았던가. 바람 그친 데서 햇볕이 뜨거워졌는데, 그 온통 환한 데서 나는 별안간 부끄러워졌다.

  매번 집 짓는 일 같았다, 너를 만나는 건. 다시 세우고 무너뜨리고 거듭 세우는 작업. 다투고 화해했다가 돌아서고 다시 납득했던 건 우리가 이해하는 과정이었을까 포기하고 마는 경로였을까. 까마득한 계단을 지나, 아득한 숲길을 너머, 길이 사라진 길목마저 건너면 거기 바위에 새겨진 옛 충신의 비문(秘文) 한 수. 천길 바위머리 돌길로 돌고돌아 홀로 다다르니 스미는 감정 이길 길 없네(정몽주). 길을 돌아돌아 이른 곳도 끝내 길이 아니었음을 말하는 그는 어쩌면 그리도 나와 당신을 닮았던지.

  산성을 뒤로 하고 노을져 노랗게 빛나는 남고사 천왕문을 어루만지는데, 뒤편의 늙은 숲이 어서 가라고 배웅하듯 우우우 물결쳤다. 걸어나오며 나는 이 절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너를 보듯이. 천천히 어두워지며 사위가 시나브로 암담해지는데 그 안에 누군가 있을 것만 같아서  못내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절집은 마지막 풍경이다 더는 들어찰 수 없는 곳에서 마음은 사무쳐
  기와를 올리고, 헤어나지 않으려는 집착이 물고기를 처마에 매단다
  못내 에돌던 기억이 몇 번을 꺾여 계단으로 오르고 급한 마음에 디딤돌
  아래로 떨어뜨린 신발은 돌아나갈 길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목어였던가, 자꾸 안에서 쿵쾅거리는데 법당 둘러찬 회벽 사방에서
  길게 소울음소리 들렸다 싸리나무 소리를 쓸어 먼 바깥으로 밀어낼 적에
  그물을 펼치는 땅거미, 문살이 촘촘히 꽃잎을 기울일 때 내려갈 길 하냥
  지워지는데 온통 컴컴한 데서 따습게 도드라지는 당신의 관능, 글썽인다
   - 정 염 詩 <음각(陰刻)>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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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사]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보덕(普德)의 제자 명덕(明德)이 668년(신라 문무왕 8)에 창건한 잘로 원래는 남고연국사(南高燕國寺)라고 불렀으며, ‘남고’는 고덕산이 자리한 남고산에서, ‘연국’은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따왔다.

원래 남고사(南高寺)였던 것이 지금의 남고사(南固寺)로 바뀐 것에 대해 연혁과 내력이 알려진 바 없는데, 중건을 거듭하다 20세기 이후, 자리를 살짝 옮기면서 그리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있다. 사천왕문이 다른 절처럼 사천왕상을 모신 것이 아니라 사천왕을 그린 탱화만 모셔 둔 점이 특이한 점이다.

옛 절터 남고사지는 현재의 대웅전 오른쪽 앞 건물 자리로, 1985년 8월 16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72호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해질녁에 들리는 남고사의 저녁 종소리를 전주팔경의 하나로 친다. 늦은 저녁무렵에 가 볼 것을 추천하며, 남고사 앞에서 보이는 전주 시내 조망도 좋지만, 부근 만경대과 억경대에서 보는 풍광이 특히 일품이다.  

아래 산성마을에서 20분 정도 오르면 되며, 올라가는 길이 아주 가파르다. 초보운전자는 가급적 차로 절마당까지 오르는 것을 피할 것. 높은 데 자리해 아주 고적하고 고고한 절집이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이보다 무언가를 결심한 이들에게 더 알맞은 사찰이라는 게 개인적인 소회다.

남고사 사진 

[남고산성]
전주의 남방인 남고산의 주봉 고덕산을 중심으로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둘러 쌓은 산성이다. 전주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며 예전엔 남원·고창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이곳에 고덕산성을 쌓았다는 내력이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 순조 13년(1813)에 성을 고쳐 쌓고 이름을 바꿔 남고산성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미 그때 성 안에 4군데의 연못과 25개의 우물과 민가 100여 채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견훤이 지은 성터는 이 고덕산성과 동고산성 2곳인데, 그가 산성을 2곳이나 지어야 했던 이유로는 건국 초반엔 험준한 지형을 지닌 고덕산에 산성을 지어 방비해야 했을 정도로 세가 약했으나 이윽고 후삼국의 최강대국으로 일어서면서 군사적 자신감으로 보다 평지에 가까운 동고산성을 지어 제대로 된 궁터를 세우고 옮겨갔다는 설이 있다. 남고산성은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하나씩 포루가 설치되어 있고, 관청, 창고, 무기고 등 각종 건물이 들어선 흔적이 남아 작지 않은 규모를 자랑한다. 성의 둘레만 5.3km에 달한다. 사적 제 294호

만경대에는 이성계가 운봉전투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가던 중 조상의 고향인 전주 오목대에서 종친들에게 잔치를 베풀면서 한고조의 대풍가를 불러 개국의 야망을 드러내자, 당시 종사관이었던 정몽주가 분노를 참지 못해 만경대로 달려와 고려왕조의 운명을 한탄하며 지은시가 각자되어 있다. 본문 중간에 인용된 시 한 줄은 그에서 따온 것이다.

남고사의 뒤편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북장대를 비롯해 성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한 바퀴 돌아 남고사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쉬엄쉬엄 걷는 기준으로 3시간 내외. 특히 만경대, 억경대에서 보는 전주 풍경이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여유가 없다면 남고사와 만경대, 억경대 정도만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남고사 사진 


● 전주교대에서 치명자산 방향으로 가다 서학파출소를 끼고 오른 편으로 꺾어 길 하나를 건너면 남고아파트가 나온다. 남고산성1길. 그 길로 더 직진해 대아산성아파트를 지나면 남고사로 가는 표지판이 나온다. 그 가파른 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남고사. 그 뒤편의 능선을 따라 남고산성이 펼쳐져 있다.

● 남고산성 바로 아래에는 딱히 이렇다할 식당이 없으므로, 전주교대 부근이나 한옥마을 부근에서 식사할 것을 권한다. 전주교대 정문 부근에는 팥칼국수와 새알팥죽, 수제비가 유명한 ‘원조 맛자랑 팥 고향집’(063-231-0993)이 있다. 한옥마을쪽은 해당 페이지 참조.

● 남고산성을 바로 내려오면 산성마을인데, 그로부터 서학파출소까지 이르는 1.5km 남짓한 길에는 산뜻한 벽화들이 가득하다. 아울러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 남부시장 방면 전동성당 한옥마을 정류장에서 472번 버스가 남고사 바로 밑인 대아산성아파트까지 운행(소요시간 10분)되나 배차시간이 160분으로 길어 권하지 않는다. 한옥마을에서 택시를 타거나 전주교대에서 걸어갈 것(남고사까지 왕복 90분)을 추천한다. 택시를 타고 남고사 마당까지 갈 경우 비용은 편도 4천원 정도이나 워낙 경사가 심하고 길이 험하므로 6천원 정도는 지불하는 편이 좋겠다.

● 남고사와 남고산성을 같이 둘러보는 데는 그 자체로만 3시간 정도 걸린다. 남고사와 만경대, 북장대, 억경대만 보는 데는 1시간 30분 정도면 된다.

● 남고사와 산성 주변에는 묵을 곳이 없고, 한옥마을과 비교적 가까우므로 저렴한 동문 거리내  한옥모텔(063-231-7770, 이름만 ‘한옥’임)을 이용하거나 한옥마을 민박(전주한옥체험관 063-287-6300, www.jjhanok.com, 학인당 063-284-9929 cafe.naver.com/hakindang)을 이용하는 편을 추천한다.



                                                                                                          사진/글 _ 에세이스트 정원선

2012/05/16 12:45 2012/05/16 12:45

겹눈

from 책읽기, 간서치의 삶 2012/05/15 20:30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 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 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기형도, '기억할 만한 지나침' 詩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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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기형도 전집을 읽었다. 문지사의 <입 속의 검은 잎>과 살림의 <짧은 여행의 기록>에다
솔이 발간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에 몇 편의 습작시, 일기, 메모들이 곁들어진 책이다.
그러니까, 이 전집은 그의 모든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그걸 읽다가 아무래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가
더 좋았던 것 같아 함께 펼쳐놓고 번갈아 살폈더니 전집에는 없고 <사랑을 잃고...>에만 있는
그의 친구들의 발문이 아주 탁월해서 그렇게 느꼈다는 걸 알게 됐다.
학교 동창이자 친구였던 소설가 성석제가 쓴 "기형도, 삶의 공간과 추억에 대한 경멸"과
생전에 그가 아끼는 후배였던 시인 장정일(이때는 장정일이 소설가라기보다는 시인이었다)이 쓴
"기억할만한 질주, 혹은 용기"가 특히 훌륭했다.

장정일의 글을 읽고서 펼쳐보는 기형도의 시 '기억할만한 지나침'은 확실히 다시 읽힌다.
결국 기형도는 자신이 울고 있는 것을 멈추지도 못했으며, 그렇다고 그 울음을 외면하고
비정해지지도 못했다. 그 안간힘의 자리가 기형도의 자리다. 겹눈으로 자아와 현실을 인정하고
수락하면서도 끝내 거기 익숙해지지 못했던 근대적 인간의 그늘이 시들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기형도는 우리 시대의 윤동주가 아니었을까. 산업화 시대의 윤동주, 도시 속의 윤동주 말이다.

나도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끝내 거기 머무를 수 밖에 없었는가를
가만히 되묻고 싶을 뿐이다. 그 너머의 자리가 근대 이후, 비로소 '다음'일 것 같구나.





2012/05/15 20:30 2012/05/15 20:30

K가 경주에 기거한다는 이야기를, 기형도를 좋아하는 친구에게서 들었다. K가 경주에 관해 썼다는,
그러나 기실 그 자신의 슬픔과 먹먹함일 뿐인 책도 읽었다. 그리고 전주의 기록을 추적하다가, K가
경주에 가기 이전에는 전주에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모두다 흘러간 왕조의 수도가 있던 곳들이다.
그는 패망한 왕국의 오래 전 서울에서 무엇을 더듬고 무엇을 남기고자 하는 것일까. 나는 K의 기록들이
하나같이 요령부득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다른 대상을 빌려오는 것은 글쓰기의
흔한 수법이지만, 그것이 주제에 비해 대상이 지나치게 크거나, 견강부회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진짜 삶을 발견하기 위해서, 인도로 갈 수도 있고, 경주로 갈 수도 있다. 전주에 갈 수도 있으며
나이트 클럽에 갈 수도 있다. 모텔이나 게임방은 왜 안 되겠는가. 그러나 어떤 장소가, 어떤 깨달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여행에서 무언가를 배울 때,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그 장소만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소, 주체가 의지와 우연과 결합할 때 비로소 의미는 무의미의 바다 속에서
길어올려져 팔딱이는 한 마리의 의미가 된다. 그것을 장소의 힘이라고 말하는 건 다만 무지일뿐.

무덤들이 늘어선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떠올려지는 건 삶일 것이다. 나는 K의 죽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그가 열심히 살고 있으며 쓰고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 모순의 자리에서
그가 수많은 주체들을, 단지 오브제로만 호명하고 뒤로 던져버리는 것을 이해하지는 못 하겠다.
사실 그가 내던지고 있는 것은 그 숱한 오브제들이 아니라 그의 삶의 순간순간일 뿐이다.
쓸쓸해 하면서 술을 마시는 일은 달콤하다. 감상만큼 짜릿한 맛의 안주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많은 날들을, 그렇게만 흘려보낼 수는 없는 게 아니겠는가.

누구에게나 한 시절은 있다. 찬란하게 빛날 수도 있고, 남들은 모를 정도로 미약할 수도 있다.
그 한 시절을, K가 슬픔을 증폭하며 스스로를 위무하는 데 바치기 보다는, 아집과 섬망에서 벗어나
다른 삶도 볼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을 이야기할 때, 오브제들도 훨씬 더 글에 잘 녹아들 것이다.







2012/05/14 13:08 2012/05/14 13:08

일부

from 견고한 성, 일상이야기 2012/05/13 18:10

이사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건 도심에서는 숲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오래된 대단지여서 동 사이사이마다 공원과 나무가 그득했었는데.
아주 간절하게, 초록이 울창한 집을 찾고 있다. 당연한 일이겠으나, 서울에서 그런 집을 찾는 건 쉽지 않다.
거기에 교통편의성과 가격조건까지 고려한다면 머리에 아주 쥐가 날 정도.

숲을 포기할 수 없는 건, 나 역시 숲의 일부이기 때문은 아닐까.
기원은 단지 시작일뿐만 아니라 삶이 자라난 조건인 것.
그러니까,
나도 숲.










2012/05/13 18:10 2012/05/13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