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성, 일상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82건

  1. 반면교사 2012/05/14
  2. 일부 2012/05/13
  3. 용화사 2012/05/09
  4. 문서 닫기 2012/05/07
  5. 함께 꾸는 꿈 (4) 2012/05/03

K가 경주에 기거한다는 이야기를, 기형도를 좋아하는 친구에게서 들었다. K가 경주에 관해 썼다는,
그러나 기실 그 자신의 슬픔과 먹먹함일 뿐인 책도 읽었다. 그리고 전주의 기록을 추적하다가, K가
경주에 가기 이전에는 전주에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모두다 흘러간 왕조의 수도가 있던 곳들이다.
그는 패망한 왕국의 오래 전 서울에서 무엇을 더듬고 무엇을 남기고자 하는 것일까. 나는 K의 기록들이
하나같이 요령부득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다른 대상을 빌려오는 것은 글쓰기의
흔한 수법이지만, 그것이 주제에 비해 대상이 지나치게 크거나, 견강부회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진짜 삶을 발견하기 위해서, 인도로 갈 수도 있고, 경주로 갈 수도 있다. 전주에 갈 수도 있으며
나이트 클럽에 갈 수도 있다. 모텔이나 게임방은 왜 안 되겠는가. 그러나 어떤 장소가, 어떤 깨달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여행에서 무언가를 배울 때,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그 장소만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소, 주체가 의지와 우연과 결합할 때 비로소 의미는 무의미의 바다 속에서
길어올려져 팔딱이는 한 마리의 의미가 된다. 그것을 장소의 힘이라고 말하는 건 다만 무지일뿐.

무덤들이 늘어선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떠올려지는 건 삶일 것이다. 나는 K의 죽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그가 열심히 살고 있으며 쓰고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 모순의 자리에서
그가 수많은 주체들을, 단지 오브제로만 호명하고 뒤로 던져버리는 것을 이해하지는 못 하겠다.
사실 그가 내던지고 있는 것은 그 숱한 오브제들이 아니라 그의 삶의 순간순간일 뿐이다.
쓸쓸해 하면서 술을 마시는 일은 달콤하다. 감상만큼 짜릿한 맛의 안주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많은 날들을, 그렇게만 흘려보낼 수는 없는 게 아니겠는가.

누구에게나 한 시절은 있다. 찬란하게 빛날 수도 있고, 남들은 모를 정도로 미약할 수도 있다.
그 한 시절을, K가 슬픔을 증폭하며 스스로를 위무하는 데 바치기 보다는, 아집과 섬망에서 벗어나
다른 삶도 볼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을 이야기할 때, 오브제들도 훨씬 더 글에 잘 녹아들 것이다.







2012/05/14 13:08 2012/05/14 13:08

일부

from 견고한 성, 일상이야기 2012/05/13 18:10

이사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건 도심에서는 숲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오래된 대단지여서 동 사이사이마다 공원과 나무가 그득했었는데.
아주 간절하게, 초록이 울창한 집을 찾고 있다. 당연한 일이겠으나, 서울에서 그런 집을 찾는 건 쉽지 않다.
거기에 교통편의성과 가격조건까지 고려한다면 머리에 아주 쥐가 날 정도.

숲을 포기할 수 없는 건, 나 역시 숲의 일부이기 때문은 아닐까.
기원은 단지 시작일뿐만 아니라 삶이 자라난 조건인 것.
그러니까,
나도 숲.










2012/05/13 18:10 2012/05/13 18:10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에 강의실 근처에 있는 아주 작은 절에 들렀다. 늦은 오후였고, 그래서
보살님들이 미륵을 보여주기 꺼려할까봐 조바심이 났다. 절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작았다.
절간은 딱 3채였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이 스님과 보살님들의 거처인 현대식 집터 요사채였고
나머지 둘이 미륵전과 칠성각+산신각이었다. 흔쾌히 허락을 해주셔서 미륵전 곁문을 열고
고려시대에 지어졌다는 미륵 석상과 마주했다. 오체투지로 예를 올리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미륵은 생각보다는 컸고, 기대보다는 작았는데 특유의 온화함과 편안함이 있어 멀리서
마음 먹고 달려온 시간이 전각 안에서 풀려 보드라워 졌다. 그때만큼은 사바세계도
아주 멀찍이서, 이곳과 나를 피해 있었다. 누군가와 마주한 순간이 세상의 전부인 듯한 충만함.
절의 이름은 미륵이 다스린다는 세상의 이름을 따라 지은 것이었는데, 잘 어울렸다.
이곳 아닌 그 어떤 절이 미륵전과 칠성각, 산신각만으로 이루어진 곳이 있을까.
이곳은 절이었으나 또한 절이지 아니하였다. 세상에 속해있으면서도 그 세상이 아닌 곳,
나는 그런 곳을 얼마나 열망했던가. 어쩌면 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닌가.

수업을 들으러 갔으나 수업은 마음에 차지 않았고, 결국 미륵만 남았다.
그가 보여준 빈 손바닥이 4시간을 되밟아온 지금까지 또렷이 기억에 박혀있다.
그건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천천히 그를 곱씹어 봐야 하리.


 


2012/05/09 02:18 2012/05/09 02:18

관객으로 전주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면서, 예전에 옆 자리를 지켜주었던 친구를 생각했다.
맨 처음 게스트로 전주를 찾았을 때, 몇 년 지나 스탭으로 전주에서 주소를 만들었을 때,
친구와 지인들을 게스트로 초대하고 그들과 어울렸을 때, 올해 게스트로서 친구들과 영화를 볼 때...
돌이켜 보면 여러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서른 넘어 가장 깊은 우정을 쌓았던 친구도 있었고
그 이상 사랑한 이도 있었으며 사이는 깊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만나게 된 누군가도 있었다.

몇 년 간 깊이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들을 잃고 나서, 공허감으로 인해 오래도록 괴로워 했다.
사랑받은 기억뿐 아니라 사랑한 기억도 허망한 상실 앞에서는 그저 고통이 된다.
내 잘못으로 그리 된 것도 있었고, 내 잘못이 아닌데도 그리 된 것도 있었는데 이젠 모두 지나간 일,
모든 과거는 과거완료로, 더는 유령을 껴안고 있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과 나는 더이상 아무런 의미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도, 나도 이제 새 시간을 살아야 할 때.

아래한글 워드 프로그램을 쓰듯 콘트롤 키와 F4 키를 동시에 누른다. 문서닫기.
P도, J도 이젠 정말 안녕. 우리 지나치다 우연히 만나더라도 인사하지 않기를.
그저 남이니까. 모른 척 자기 삶만 살아가기를.




















2012/05/07 13:40 2012/05/07 13:40

9일간의 영화 여행이 막 종착역에 들어선 참입니다. 내일 오전과 오후 한 타임씩
그리고 폐막식이 열리면 2012년 제 1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안녕을 고하겠지요.
좀전에 20시 30분, <라자르 선생님>을 보고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지난 8일간을 곰곰히
되씹어 보았습니다. 본 영화들과 보지 못한 영화들, 만난 사람들과 만나지 못한 사람들,
누군가 전하는 말과 이해하지 못한 말들, 스탭이나 연고자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본
올해 전주영화제는 훌륭했다고 기억합니다. 그것은 축제 기간 내내 밝은 햇살을 드리운
최고의 날씨 덕분이기도 하고, 늘 땀을 뻘뻘 흘리며 사람들을 인도하던 자원활동가들의
해맑은 표정 덕분이기도 하며, 전주영화제만이 가능한, 더없이 특별한 영화들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이 영화를 만들고 준비한 스탭과 집행위 여러분들 덕분이기도
하겠지요. 9일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고 그렇지 않다면 또 짧지 않은 시간일텐데,
저는 이상하게 허전함을 느낍니다. 그건 어떤 허기 또는 갈망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뭔가 조금 더 이어졌으면, 지금 꾸는 꿈에서 깨지 않고 더 펼쳐졌으면 싶은 거죠.
그런데 이런 모자람, 서운함 같은 감정은 저만 느끼는 것일까요?

제가 올해 전주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고통으로 시작되고 복수심으로 타올랐으나
격정으로 전이되어 버린 쓸쓸함을 말하는 영화 <비밀의 문>, 4.3과 강정마을을 통시적으로
꿰뚫으며 제주 섬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다큐 <비념>,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몇 천 명의 관객들과 함께 본 힙겹지만 유쾌한 일탈 드라마 <자이언츠>, 마술같은 카메라 워크로
시간을 재조립하는 아름다운 와이드 영화 <남서쪽>, 발랄하고 재기넘치는 감각으로
미국 소녀들의 사랑과 우정의 속살을 그려보이는 코미디 <방황하는 소녀들>,
신랄한 대사에 현실의 옷을 입혀 로맨스의 다른 맛을 자아내는 한국 영화 <이크 하우 반 야우>,
상처의 풍경과 공감의 방정식을 따뜻한 시선으로 한 교실에 구현하는 <라자르 선생님>...
스크린에서 영화들이 명멸하는 동안 저는 자주 웃었고 때로는 비명을 질렀으며
가끔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리석은 말이지만, 새삼 저는 영화란 이렇게나 뜨거운 것이로구나
하는 걸 다시금 실감했지요.

며칠 전, <비념>을 보다 제주 생각이 나서 객석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저는 소리를 죽여가며
펑펑 울었더랬습니다. 이윽고 슬픔이 희미해지자 겸연쩍고 창피한 마음에 저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봤지요. 그런데, 그 때 극장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사람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경험은 그 뒤로도  계속됐지요. <아버지 없는 삶>을 보고 공유되는 괴로움에
시나브로 한숨을 흘리는 사람,  <미쓰 마마>가 아우르는 코믹하고도 비릿한 현실에
의자에서 등을 떼 자꾸 화면 앞으로 다가가는 사람, 한밤을 밝히는 야외상영작 <퍼펙트 게임>의
두 거장 투수들의 대결에 꼴깍, 침을 삼키는 사람...

사실 지금은 영화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대 아니겠습니까. 도시는 화려한 멀티플렉스로
3D영화까지 상영하고,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다운, 감상할 수 있게
도와주지요. 유투브와 P2P를 뒤져보면, 국내 미개봉작인 거장들의 걸작 영화와
신예들의 최신작도 클릭 한 번으로 스트리밍할 수 있습니다.
예전처럼 꼭 극장을 찾아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소거'된 안락하고 편안한 시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올해 전주에서 본 8일간의 영화들을 가슴 깊이 긍정합니다.
그건 개별적인 삶에서 일상의 무료함을 덜기 위해 미디어가 거른 영화들을 사사로이 선택하는
'TV 대체물'이 아닌 까닭입니다. 전주가 보여준 영화들, 전주가 마련한 영화들은 제게
'함께 꾸는 꿈'이었습니다. 저 역시 개별적으로, 소소한 이유로 전주영화제를 찾았고,
취향을 쫓아 사적으로 즐겼으나 전주의 영화들은 저를 그 개인의 자리에서,
개인으로서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다시 비춰주었더랬지요.
'전북 버스 파업'의 한복판에서, <MB의 추억>이 가리키는 엄정한 현실에서, 강정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잡혀가고, 방송사 파업이 계속되며 <무한도전>이 방영되지 않는 2012년의 봄이
영화관과 영화관 바깥에서 치열하게 맞붙고 있었지요.

그 모든 것들을 그저 개별적인 사건으로, 반복되는 역사의 단순성으로 치부하고 말것인가.
전주의 영화들은 제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눈물을 훔치다 돌아본 다른 관객들의
저와 똑같은 반응에서 거부와 결의의 공감들을 같이 읽었더랬지요.

세상은 흘러가고, 감정은 또 잊히겠지요. 언젠가 저는 올해 봄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밋밋한 장면으로 떠올리고 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기억하는 동물이고,
기억하는 동물은 약속하는 동물이며, 약속하는 동물은 실천하는 동물이기도 하므로
제가 여기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 공감하고 교감하며 결심한 것들을 영화관 바깥에서
제 삶의 한 부분으로 삼는다면, 영화는 더이상 영화만이 아니고 저는 영화를 보기 전의
그 사람만인 것도 아니겠지요. 아주 소중하고 기꺼운 우연, 올해 전주영화제가
제게 그런 실마리로, 하나의 불꽃으로 시작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본 영화 <라자르 선생님>의 대사에는 이런 게 있었습니다.


"망명 역시 하나의 여행이 아닌가요?"
"대다수 이민자들에게 망명은 여행이라기보다는 불법 체류처럼 인식되지요."


하나의 관념을 때로는 낭만적으로 때로는 비판적으로 뒤집고 다시 뒤집으면서
서로 다른 개별자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로 묶는 영화, 우리 모두가 개인이면서 동시에 시민이며,
'인민(People)'임을 알려주는 전주의 영화들 속에서 저는 아주 행복했습니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 영화가 그저 영화만이 아니라는 것, 삶은 교류하면서 더 크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이렇게 생생하게 깨우쳐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일이 폐막이지만 미리 인사를 전합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전주에서, 그리고 삶의 모든 곳에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역시 우리인 당신들 모두와 함께.



2012/05/03 23:57 2012/05/03 2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