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감을 붙들다, 상념'에 해당되는 글 46건

  1.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2) 2010/08/20
  2. 과잉과 과잉, 영화 '아저씨' (2) 2010/08/04
  3. 고미숙 2010/08/03
  4. 황동규의 시 2010/08/01
  5. 영월 책을 찾아보다가 (2) 2010/07/20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 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할머니는 마녀를 닮았다'라고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고 부른다' 라고 써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번병은 친절하다'라고 쓴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번병이 우리가 모르는 심술궂은 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만 써야 한다. '당번병은 우리에게 이불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또한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좋아한다'는 단어는 막연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 '호두를 좋아한다'와 '엄마를 좋아한다'는 같은 의미일 수가 없다. 첫번째 문장은 입 안에서의 쾌감을 말하지만, 두번째 문장은 감정을 나타낸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까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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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은 '작은 이야기'를 다루면서 결국 '작은 이야기'의 범주를 넘어선다. 위의 소설도 그렇다.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이야기, 소설이라는 형식을 넘어서려는 이야기들, 걸작들이 정말 많구나.
2010/08/20 23:12 2010/08/20 23:12

영화 '아저씨'는 무리한 컨셉과 매끄럽지 않은 드라마, 무리하게 만든 사족이 덧붙여져 처음부터 끝까지,
과잉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형식으로 장르를 구분하자면 하드코어 액션이 되겠지만 내용으로 판단한다면
명백한 '신파', 안쓰러울 정도로 한심한 멜로에 속할 것이다. 주연을 맡은 원빈은 러닝타임 30분 경부터
고난도의 격투씬과 총격씬을 펼치며 고군분투하지만, 그건 단지 원빈이라는 미남배우의 이미지,
육체의 전시장일 뿐, 영화적 설득력이 장면을 거듭할수록 떨어지면서 점점 배우과 미장센이 따로 돌아가고
이해할 수 없는 전개가 마지막까지 계속된다. 감독 이정범은 2006년 설경구, 조한선 주연의 '열혈남아'를
찍은 바 있는데 이번 영화를 보면 안타깝게도 시나리오를 쓰는 재능이 무뎌졌거나 영화적 균형을 맞추는
감각을 잃었단 생각이 든다.  

엊그제 영화 '인셉션'도 보았는데, 서로 다른 이 두 영화를 비유로 대조해 본다면 이렇다.

"'아저씨'가 다방 커피라면,  인셉션은 T.O.P야."
(미안하지만 '그냥 커피' 급에 못 미친다)


2010/08/04 21:23 2010/08/04 21:23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한마디로 대상만 잘 고르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한 건 대상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고, 아직까지 사랑을 못해 본 건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참으로 신기한 인과론이다.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판에 나는 몸만 쏙! 들어가면 되는가? 실패한 다음엔 다시 몸만 쏙! 빠져나와 복수극을 펼치면 되고?  이렇게 지독한 이기주의가 또 있을까?  상대를 잘못 만나 인생을 망쳤다면 그런 상대를 선택한 '나'라는 존재는 대체 뭔가?(15쪽)

사랑이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즉, 내가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가 사랑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존재의 궤적을 만든다. 존재의 흐름과 궤적, 그것을 일러 운명이라고 말한다. 내 운명의 주인은? 바로 '나'다. 그러므로 시작에서 종결까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145쪽)
  - 고미숙,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중에서, 그린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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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을 계속 읽고 있다. 임꺽정, 호모 에로스, 열하일기... 그녀의 글은 가볍고 신랄한 문체 덕분에 쉽게 읽어낼 수 있겠다는 오해를 품게 만든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문장은 빛을 발하고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그녀는 어쩌면 전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인문학을 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꾸준히 그녀를 읽게 될 것 같구나.  

2010/08/03 20:29 2010/08/03 20:29


황동규의 시들은 특히 '이동'과 잘 어울린다.
몸의 이동뿐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 어떤 안간힘 같은 것들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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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견디기 힘든/황동규


그대 벽 저편에서 중얼댄 말
나는 알아들었다.
발 사이로 보이는 눈발
새벽 무렵이지만
날은 채 밝지 않았다.
시계는 조금씩 가고 있다.
거울 앞에서
그대는 몇 마디 말을 발음해 본다.
나는 내가 아니다 발음해본다.
꿈을 견딘다는 건 힘든 일이다.
꿈,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삶의 몽땅, 쌓아도 무너지고
쌓아도 무너지는 모래 위의 아침처럼 거기 있는 꿈



2010/08/01 14:07 2010/08/01 14:07


영월에 여행가기 앞서 자료를 찾아보려고 서점과 도서관을 뒤지고 있는데
이것 참...읽어볼만한 자료가 정말 없군요. 서점엔 아주 옛날 관광가이드 책밖에 없거나
대충 만든 아이들용 교육서뿐이고... 국내여행서는 잘 알려진 몇몇 곳 빼고는
제대로 정리된 책들이 드물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됐습니다. 블로그쪽 정보를 참고하는 게
훨씬 더 유용할 듯 하네요.

전라도쪽 여행서도 문화답사쪽 말고는 괜찮다고 할 만한 게 없는데
출판사들은 '시장이 작다' 등등의 이유로 그쪽 책을 만드는 건 또 기피하더라구요.

되는 건 몰리고, 안되는 건 하나도 안 나오는 이 확실한 '쏠림'.
책의 종수는 옛날보다 훠월씬 다양해졌는데
실제로 책이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저 많이 팔릴 것 같은 분야의 책만 오십보 백보 쏟아지고 있을 뿐.



2010/07/20 17:41 2010/07/20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