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화엄은, 아름다움으로부터 온다고 믿었던 옛 나라의 서울에 다녀왔다.
살아있는 자들의 집과 죽은 자들의 집, 그리고 그들이 함께 모시는 부처들의 집이
촘촘히 어우러진 경주에서 나는 사랑이란 약속도 아니며, 후회도 아니고, 그저 현존이라고
잠시 생각했다. 기대섞인 내세와 고통의 현세에 모두 속아주면서도 꿋꿋이 지금-여기를
살아내는 일이라고. 망상에 빠졌다가, 턱없이 절망했다가, 다시금 현실을 도피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지만, 내 욕망이 고착되어 있는 한, 스스로 풀어내지 못하는 한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또한 필요한 일이라고 수긍했다. 지상의 천국이란 이렇게
절과 무덤과 집이 한데 뒤섞이는 일이라고 믿었던 신라와 달리 어쩌다 우리는 시간을
세세히 구분하게 됐을까도 헤아려 봤다. 집채만한 바윗돌 하나를 깎고 또 깎아
웃는 얼굴을 만들어 두면 그것이 대대손손 미륵인 것을, 조아리고 굽히는 일에 건건이
자존심 세워가며 마음을 아무데도 주지 않는 인색한 처세에 대해서도 다시.
장엄이란 손(몸)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생을 온통 휘감아 내는 것이라고 믿는
그들의 땅은 꼭 절 앞이 아니더라도 모두 불국토였다. 사과나무 한 그루, 붉은 수수 한 줄기
모두 동일한 그물망에 있었는데, 지금은 입장료 내고 잠깐 그려볼 수 있을 뿐이다.
너를 채집하는 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세상을 무대로 환각하는 일,
시작한 것도 없는데 작별을 결심하는 일, 모두 즐거웠다. 고마웠다. 포근했다.
이제 가시라. 영영, 당신이 아니라 내가, 눈감는 일에서 머얼리. 덥힌 피가 식도록.
뚜렷해 지도록, 극장에서 벗어나도록, 명정에서 깨도록, 이 한 줌의 세월.
- 불국사 경내에서, 올해의 마지막 가을이 한창이었다.
- 안압지에서, 물의 데칼코마니.
-경주 남산 자락에서, 계절의 춤.
- 경주 시내의 노동-노서 고분군에서, 저 사잇길로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했다. 생이 저무는 날에.
모든 사진은 언제나 그렇듯, 무보정 리사이즈. 소니 nex3. 클릭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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