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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물의 위계담, 영화 "교육" (2) 2012/03/20
- 비극의 어떤 효용 : 벨라 타르 <토리노의 말> (10) 2012/02/08
영화 <교육 Un Education>은 196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총명하고 어여쁜 소녀가 돈 많고 유머러스한
나이든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가 간신히 제 삶을 되찾는 이야기를 그린다. 감독은 소녀가 처한
뻔한 현실, 그러니까 보수적이고 인색한 집안 환경, 고루하고 지시일변도인 학교와 교사, 새로운 것과
로맨스에 열광하는 10대 친구들, 을 단조로운 배경으로 놓고서, 부유하고 친절하며 센스 넘치는 잘생긴 남자와
그가 보여주는 클래식 음악회, 고급 레스토랑, 미술품 경매장, 파리의 밤을 휘황한 조명으로 밝힌다.
남자는 중간중간 본인의 위선을 드러내지만 소녀는 거기에 눈감는 대신 풍요와 안락을 보장받는다.
감독은 주제를 말하기 위해 여고생을 빌려왔을 뿐, 드라마가 10대의 이야기에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
이 영화가 신기한 점은 서로 다른 위선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다. 카메라는 어렵게 삶을 꾸려가면서도
딸에게 명문대를 권하는 아버지를 추레하게 비추는 대신에, 사실상 도적질에 가까운 사업을 운영하면서
그 재산으로서만 가능한 남자의 로맨스에 대해서는 더없이 관대하다. 결말에 이르러서야 감독은 비로소
뒤뚱거리면서 아버지를 변호하고 남자를 악인으로 만드는데, 그 비뚤어진 열광의 결과로 얻게 되는
소녀의 각성을 다시 명문대라는 속물적 가치에 투영함으로서 영화의 격을 스스로 낮춘다.
결국 이 영화는 성장담이라기보다는 속물끼리의 위계담이 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 <교육>이 보는 내내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 이유는, 영화 내부에 있지 않고 영화 바깥의
현실에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대리하는 풍경은 1960년대가 아니라 자본이 세계를 일당독재하는 지금이다.
영화 바깥의 현실은 1960년대 후반에서 한번 용틀임을 겪었으나, 영화 속의 현실은 그런 변화 없이
현재와 직렬로 연결되어 있다. 소녀가 명문대에 합격하고 새로운 삶을 얻는다는 결론은 2010년대
일반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유일한 선택지와 일치한다. 그 비루한 삶의 내용과 경도된 가치가
영화의 현실일 뿐 아니라 이 땅의 현실이라는 점이 영화 바깥에서 설득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자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교육>의 2부가 만들어진다면, 영화는 아마도
학교 교사가 된 소녀의 삶, 미스 스텁스 선생이 되고만 그녀의 지루한 삶을 그리게 될 것이다.
작금의 현실에서 착취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고 독립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생활을 꾸릴 수 있는 방법은
'공무원' 밖에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가 제도로서의 교육이 아니라 진짜 배움을 말하기 위해서는
학교 밖의 삶, 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명성이나 전통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맞싸우고
허위를 폭로하며 제 이름으로 곶추서는 분투를 그렸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는 아주 안온하게,
다시 로맨스로 돌아간다. 그 로맨스란 남자와의 화려했던 연애처럼 실속은 없고 결국 허무할 뿐인데도 말이다.
영화는 딱 한 번, 이런 말을 내뱉는다. "Action is character." 그것을 감독의 진심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편안하게 현실의 모든 면을 수긍하고 마는 시선. 양시론은 결국 양비론에 지나지 않는다.
캐릭터에 안주하기보다, 영화적 현실에 그치더라도 구체적으로 행동해 그 이상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을까.
뒷맛이 아쉽고 씁쓸한 영화.
* 영화 정보 : [씨네21] 교육(Un Education)
비극의 어떤 효용 : 벨라 타르 <토리노의 말>
“1889년 1월 3일 토리노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는 비아 카를로 알베르토 6번 문 밖으로 나선다. 산책을 하거나
우편물을 가지러 갈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마부가 말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말은 움직일 줄 몰랐다. 마부 이름이 뭐였더라? 주세페, 카를로, 에토레? 하여간
마부는 참다 못해 채찍을 휘두르고 만다. 니체는 인파로 다가가서 분노로 미쳐 날뛰는 마부의 잔혹한 행동을
말리려고 한다. 건장한 체구의 니체가 갑자기 마차로 뛰어들어 말의 목에 팔을 두르더니 흐느낀다.
이웃이 그를 집으로 데려갔고 그는 침대에서 이틀을 꼬박 조용히 누워 있다가 마지막 말을 웅얼거린다.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 그 후로 10년 동안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정신 나간 상태로 누워 있는다.
그 말(horse)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영화는 니체의 임종을 다룬 이 나레이션으로부터 출발한다. 토리노의 말은 원제 그대로 토리노의 말 한 마리와
마부, 그리고 그녀의 딸 이야기다. 영화엔 대사가 적고, 이렇다 할 사건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마차를 끌고
바람이 몰아치는 들판을 달린 마부는 얕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황야로 들어서고, 거기엔 낡은 집이 한 채 있다.
거기에서 마부는 그녀의 딸과 살고 있다. 말 한 마리, 마차 한 대, 삐걱이는 고택과 우물 하나만이 세상의 전부다.
바람은 점점 심해지고, 그에 따라 생활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누군가 집을 두드리고, 집 밖에서는
잠시 소란스러운 해프닝이 일어나지만 그들은 드라마의 중심이 아니다. 카메라는 그저 우직하게 또는 담담하게
그들의 6일간을 증언할 뿐이다.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은 그 담담한 증언이 전부인 영화다.
그 담담함 또는 우직함은 영화 속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단호한 선고(宣告)로 변한다. 관객 혹은 독자는
참관인도 배심원도 의뢰인도 아니었으나 어느새 피고가 되어 황야에서 등장인물들과 함께 폭풍에 휩싸인다.
판결은 가차없으며, 법정은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침묵 속에 폐정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극장은 무거운 침묵으로 공명한다. 146분이라는 러닝 타임은 실제보다 훨씬 더 짧게 느껴지지만
형언할 수 없는 절망을 상영 내내 전달한다. 흑백 화면은 종말의 괴로움만이 총천연색으로 펼쳐지다가
어둠으로 응결한다.
화면이 꺼지고, 장내의 불이 켜지자 사람들은 말없이 의자를 비우고 출구로 빠져나갔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당혹스러워 보였다. 너무 난해하다는 이들도 있었고, 이토록 직접적일 지 몰랐다는
사람도 있었다. 단조로운 드라마에 대해 극히 상반된 반응을 초래하는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일 것이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못하든, 그 선고의 생생함만은 해일처럼 객석을 덮친다. 그 스케일이나 격렬함이
지독할 정도로 웅장하기 때문에 잔상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영화는 니체와 상관 없기도 하고
직렬로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영화는 우리와 깊게 관계맺고 있기도 하고 전혀 무관한
은둔자의 생이기도 하다. 또 영화는 다른 모든 영화를 수렴하면서도 그 어느 영화에도 가 닿지 않는다.
아마 그것이 평자들이 벨라 타르를 위대한 영화 창작자(Cineaste)라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벨라 타르 역시 그를 가리키는 수사나 별칭과는 상관없는 그저 무뚝뚝한 장인일 뿐이라는 것을
<토리노의 말>은 묵묵히 증명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함께 본 영화평론가와 함께 저녁을 먹고, 맥주 한 병 씩을 마신 후 헤어졌다.
한파에 휩싸인 서울 광화문은 칼바람이 몰아쳐 영화 속 풍경만큼이나 혹독했는데, 영화에 대한 감상이
너무나 달라 이야기는 탁자 위에서 잠시 일렁이다가 곧 꺼졌다. 감독이 촉발한 드라마는
각자의 삶에 번졌지만, 각자는 모두 각자의 삶만큼만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고통이나 절망은
모두의 것이 아니었다. 집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 나는 이 영화가 왜 걸작이라 불리는지를 생각해 봤다.
아마 그 이유란 영화를 보는 간단한 행위로, 제 삶의 가장 깊은 어둠을 떠올리도록 만들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여러모로 참 얕은 인간이라는 것,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종종 야멸차고 냉담해 지는 게
그 얕음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영화는 의도한 적 없었겠으나 분명하게 일깨워 준다. 결국 이 영화는
어떤 질문의 형태도 띠지 않고서 보는 이의 삶을 안에서부터 타격한다. <토리노의 말>은 규정한다.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응시야말로 비극의 진짜 효용임을.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그 소용돌이 앞에서
나는 내 스스로에게조차 타자였다.
어둠은 모두에게 있고, 종말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니체처럼 누군가는 유언까지 기록되지만
대개의 이들은 살아있었던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차이는 생각만큼 대단한 게 아니다.
영화가 압축해 보여주는 인생은 벨라 타르의 지엄한 판결문에도 불구하고, 실로 다채로운 방식으로
영화 밖에서 명멸할 것이다. 그래도 내 안의 한 줌 어둠을 걷어내는 일, 또한 누군가의 인생에 드리운
음지를 비추는 일, 그로써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굉장한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짐짓 모르는 척
눈감지 않는 일, 그 역시 소중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분간 한파는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이 단순한 명제에 대해서도 그렇구나와 그래서를 갈라 이끌어내는 영화, 그것이 <토리노의 말>이었다.
도저히 평가할 수 없다. 직접 보시라.
토리노의 말
The Turin Horse
감독 _ 벨라 타르
주연 _ 에리카 보크, 야노스 데르지
장르 _ 드라마
러닝타임 _ 146분
제작국 _ 헝가리, 프랑스, 독일, 스위스, 미국
제작연도 _ 2011년
관람등급 _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_ (재)전주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개봉 _ 2012년 2월 23일
개봉관 _ 아트하우스 모모
공식블로그 _ http://jiff.tistory.com
어바웃 어 보이는 꽤 괜찮았던 걸로 기억되는데요...
기묘한 결말도 잊혀지지 않고..
그 점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 기대하셨던 분들이 많으셨더라구요. 실제로 평가가 나쁘지 않기도 했고... 영국 아카데미는 거의 휩쓸지 않았던가 합니다. 전 사실 '어바웃..'을 안 봐서... 이 영화만 보자면 그냥 좀 아쉬웠어요. 완성도를 훨씬 더 높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