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들

from 빛과 그늘, 사진 2010/09/05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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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7월 영월에서, Sony A500. 무보정 리사이즈.



2010/09/05 21:52 2010/09/05 21:52

새벽 서너 시 경부터 영 심상찮더니 오전 5시부터 8시 사이가 가장 굉장했다.
마루쪽 창문 앞 전나무가 흐늘거리는 채찍처럼 나부꼈고
몇 분 간격으로 무언가 부서지고 부딪히고 무너지는 굉음이 들렸다.
오전 6시 넘어서부터는 모든 창문을 닫았는데도 바람은 끊임없이 안으로 넘쳐흘렀다.
창문이 부서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대응조치를 했는데도
과연 그 정도로 끝날 수 있을까 싶어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다행히 오전 8시를 넘기면서부터는 크게 잦아들었지만
과연 출근, 등교하는 이들이 무사히 이 곤경을 통과했을까 걱정스럽더라.

오후에 집을 나서보니 온 세상이 태풍의 할퀸 자국으로 가득하다.
아파트 숲은 뽑히고 휘어진 아름드리와 가지들의 잔해로 처참했고
주차장과 자동차들은 초록잎으로 짓이겨져 말이 아니었다.
상가의 몇몇 간판은 떨어져 버렸거나 간신히 덜렁거렸다.
뉴스는 계속 많은 이들이 다쳤고 사고가 빗발쳤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지경이 됐는데도 끝내 휴교령은 내려지지 않았고(초,중학교만 간신히 2시간 등교 연기)
임시 휴업령도 발효되지 않았다. 정말로 오늘 아침의 출근, 등교길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는데도
책임자란 것들은 하나같이 나몰라라, 그래도 학교에 가고 회사에 가서 앉아있으라고 했다.
이것이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목숨을 걸 가치가 없는 일에, 아주 하찮은 일에, 하루쯤 미루거나 안해도 괜찮은 일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학생이나 직장인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반 노예같은 삶.

우리가 오늘 태풍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기를 바란다.
결코 잊어버리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 밟아나가자.






2010/09/02 18:29 2010/09/02 18:29

기원

from 견고한 성, 일상이야기 2010/09/02 00:11

태풍 곤파스가 섬과 전라도쪽을 때린다고 한다.
여파로 서울에도 비가 심상치 않다.
그저 아무 탈 없이 지나가기를 바랄뿐.




2010/09/02 00:11 2010/09/02 00:11

9월 대문 사진은 "이호바다(이호테우해변, 이호해수욕장)"입니다.

제주에는 이름난 해수욕장이 여럿 있지요. 협재, 금릉, 중문, 함덕, 표선, 김녕, 삼양...
그중에서 이호바다는 그 수질이나 선호도에서 엄지손가락보다는 새끼손가락에 더 가까운 해수욕장이에요.
왜나면 제주 도심과 가까우니까요. 늘 이용객도 많고, 유흥시설이 모여있는 데다가 야간 개장으로 인해
바가지 논란도 끊이지 않는 곳이지요. 도민들이 아주 쉽게 시내버스 타고 언제라도 휙 다녀올 수 있는 곳인데
그만큼 자본의 손속이 해변을 장악하고 있는 곳이기도 해요.

그러나 이호 역시 이 섬의 바다.
한 여름을 보내고, 그 밖의 계절에 한적한 이호는 아주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넓은 백사장과 그 위를 몇 번이고 다시 적셔오는 바다,
수평선에서부터 불어오는 맑고 상쾌한 바람,
섬 특유의 검은 돌들을 말갛게 씻는 부드러운 물결.

특히 비 갠 뒤의 이호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하게 빛나지요.
여름에만 이호에 가본 이들은 다른 계절의 이호를 결코 짐작할 수 없을 거에요.

기회가 된다면, 지금처럼 한적한 즈음에 이호의 해안선을 따라 걸어보시길.
알작지로 유명한 내도바당에서부터 이호해수욕장, 도두봉 해안도로, 용두암까지는
약 2시간이면 걸을 수 있는 제주 도심 올레라고 할 수 있지요. 길도 편하고 느낌도 색달라요.
섬의 자연이 아직 도시와 공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주죠.

제주에 관해서는 '신비주의'가 옳아요. 경험한 이들만이 말할 수 있죠.
정해진 올레길이나 관광지도에 구애받지 않고, 가고 싶은 길로 빠져본 사람들만이
발견할 수 있는 숨은 매력이 많은 곳이니까. 시기에 좌우되기보다, 보고 싶을 때 떠나시기를.

일없이 그저 바다를 거니는 일의 행복을 당신이 직접 겪어보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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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갠 날의 이호 바다, 2009년, KM D5D, 무보정 리사이즈. 클릭하면 좀 더 커져요.



2010/09/01 14:13 2010/09/01 14:13

그는 이제 여든 넷이 됐다. 젊은 시절, 빛나던 재능으로 동경과 서울에서 명망을 높인 그는
천명을 알게 된다는 이순의 나이에 고향 제주섬으로 돌아온다. 그때부터 변시지의 화풍은
급격하게 변모하는데, 80년대부터 그림에 '바람'이 스며들게 되면서 마침내 경지에 이른다.
황톳빛 섬과 회색 돌담집, 키큰 해송과 마른 까마귀, 사람 하나와 말 한 마리는 폭풍같은 바람 속에서
때로는 격정을 담고 때로는 그리움을 드높인다. 무엇보다 섬을 세차게 뒤흔드는 바람 속에서
오브제들은 제 각기의 물성을 놓고 한 가지 정감으로 뭉친다. 그의 대작 앞에 서 있노라면
그대로 태풍 속에 갇힌 것만 같을 정도로 그림은 생생하게 보는 이를 진동한다.

작가는 이제 나이가 들어 30호 이상의 작품은 그리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30호 미만의
그림들만 보더라도, 그가 아직 늙지 않았으며 여전히 재능과 격정으로 번뜩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물론, 규모의 힘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대작을 만나는 것은 더없이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모 백화점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바람에 가 봐야 할까 아닐까를 수없이 망설이다
마지막 전시일인 오늘에야 들르게 됐다. 제주 화가 이름을 여럿 알고 있지만 어쩌면
그야말로 가장 제주적인 화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오늘 했다. 이 전시를 마지막으로
2011년 서귀포에 건립예정인 변시지 미술관에 그의 작품 500여점이 기증된다고 하니
제주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이들, 그림으로서의 제주섬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후에 들러봐도 좋겠다. 단언하지만, 당신은 변시지를 만나면서 그간 당신이 적어왔던
제주 화가의 리스트들을 재구성하게 될 것이다.

섬의 색을 한 가지로 단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어줍잖은 이들이 제주의 아름다움을 논하면서
찬사의 도구로 수많은 낱말들을 들먹였으나 제주섬의 색은 도저히 몇 개의 단어나 레토릭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다. 그 담아낼 수 없는 한 순간, 바다가 섬과 만나고 바람을 거스르며
지상과 천상을 분간 할 수 없는 지독한 한 순간을 변시지는 그린다. 그 그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도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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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시지, "저 편 너머", 1992, 출처는 http://www.unionpress.co.kr/news/detail.php?number=65321&thread=02r03r01





2010/08/31 20:29 2010/08/31 2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