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호, 패션지 '하퍼스 바자' 특별판 'BAZZAR PURE'에 실린 글입니다.
잡지 그대로를 보시는 게 가장 좋지만, 원고 내용을 눈여겨 보시는 분들도 계시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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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뉴스에디터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감독이 우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한국과 일본에서 치뤘던 월드컵이 있었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노란색 젊은 대통령 후보가 있었으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때였으니 지금으로부터 7~8년 전이다. 나는 그때 이름을 대면 알만한 포털 사이트의 헤드라인 뉴스를 담당하고 있었다. 정치와 스포츠, 전쟁 같은 여러가지 굵직굵직한 일들을 거치면서 인터넷이 우리 일상과 긴밀하게 달라붙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신문 같은 올드 미디어가 포털 뉴스의 속보와 인터넷 커뮤니티의 소통을 따라잡기는커녕 속수무책으로 시장을 내주면서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아직 20대였던 나는 새파랬지만 그만큼 자신만만했다. 뉴스 하나를 포털 메인 페이지에 올릴 때마다 백만에 가까운 숫자가 실시간으로 그에 반응했다. 그 시절, 내가 취해있던 것은 네티즌들과 함께 꿈꾸던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그저 아주 간편한 소통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때, 매일매일 밤늦게까지 때로는 새벽까지 뉴스를 쉼없이 업데이트해야 했지만 그 일은 이라크 전쟁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즐거웠다. 세상의 변화가 내 손 끝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방송과 잡지 등 여러 곳에서 취재가 들어왔고, 스카우트 제의도 빗발쳤다. 일은 힘들었지만 어깨가 으쓱한 시절이었다. 주말을 내쳐 일하면서도 그게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연봉 인상이나 승진으로 보상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렇지만 몇 년 간 그런 일과가 이어지자, 몸과 마음 양쪽에서 무리가 생겼다. 사건이 생기면 무조건 대기해야 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태에 계속 긴장하며 뉴스를 만들어 내는 일에 알게 모르게 지쳐갔던 것이다. ‘남들처럼’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직장을 옮겨 대기업으로 이직하게 됐다. 옮기고 나니 월급도 크게 오른데다, 그룹사 뱃지가 주는 안정감에 저도 모르게 종종 어깨를 으쓱하곤 했다. 그렇지만 일 자체가 달라진 건 아니었다.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일 없이 연봉만 퍼주는 곳은 없었다. 대기업으로 옮겨와서도 밤낮없이, 주말없이 일하는 패턴은 변함없었다. 결국 나는 주말마다 휴대폰을 끄고 이 땅의 이곳저곳으로 도망다녔다. 고성, 대천, 남해, 속초, 제천, 부산, 목포, 강릉, 변산, 통영… 소심했던 나는 여행지에 도착해 휴대폰을 켜보곤 했었는데, 그 와중에 사건이 터져 여행지에서 PC방을 찾아 뉴스를 원격으로 올려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상사가 휴대폰 음성메시지에 ‘일이 터졌는데 왜 연락이 안되냐’며 욕을 한 뭉텅이 남겨놓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멀리 떠나온 일조차 다 소용없는 것처럼 허망하게 느껴졌고 나는 아무데도 마음놓고 쉴 곳이 없구나, 쓸쓸히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다 제주에도 가게 됐다. 아무것도 모를 때라 항공-호텔-관광이 하나로 묶인 여행사 주말 단체상품을 이용할 때다. 가이드를 따라 45인승 버스에 올라타선 한심하고 재미없는 관광지만 신물나게 돌아다닐 때였는데… 휴대폰이 또 울리는 거였다. 거의 울상을 하고선 전화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상사였다. 일이 또 생겼다면서 나보고 어디냐고 물었다. 제준대요 하고 답했더니 상사는 전과 달리 잠시 말이 없었다. 그뒤로 한참을 머뭇머뭇하더니, 거기까지 내려갔는데 이번에는 좀 쉬어라, 내가 알아서 해보마고 했다. 전화를 끊고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것도 공식적으로 주말에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진 셈이었다. 그후로 버스가 닿는 여행지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제주를 흡입하듯 관찰했다. 이렇게 달콤한 시간은 다시 없을지도 모르니까. 돌 하나, 흙 한 점, 꽃 한 잎, 파도 한 결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 전화 때문에 흥분했는지, 그때쯤 들른 제주의 명승지가 특별히 더 근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그날, 밤에도 눈을 붙이지 않고 숙소의 창 너머 하염없이 제주 바다를 바라보았다. 낮의 떠들썩한 여행지들과는 달리 차분하고 고요한 밤하늘 하래 꼭 쓰다듬어주는 것 마냥 부드러운 음색의 물결 소리가 더없이 황홀해 잠드는 시간 자체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신기하게 그 뒤로도, 상사는 내가 제주에 있다고 하면 더 이상 일에 관련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그 후로는 거의 제주만 다녔다. 몇 번을 내려오게 되자, 내용이 그게 그거인 버스 단체 여행 같은 것은 자연스레 피하게 됐다. 렌터카를 빌려 유명한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도 서너 번이 넘자 렌터카회사에서 제공하는 지도 책자로는 갈만한 곳들이 드물어 졌다. 서울에서 제주도에 관한 가이드북을 사고, 인터넷을 뒤져 안 가본 곳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은 당시만 해도 그렇게 많지 않아 호기심을 채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윽고 나는 제주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찾아읽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제주도 일간지를 구독하고, 제주섬에 관한 것이라면 도서관을 뒤져 현재의 책은 물론 일제시대 기록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러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은 4.3 같은 쓰라린 현대사, 그보다 더 오래 전 제주가 하나의 국가였을 때부터 이어진 뿌리깊은 슬픔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렇게 제주도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상처 입은 제주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자 섬을 여행하는 방법도 조금씩 달라지게 됐다. 육지사람으로서 바다에 대한 무조건적인 ‘로망’에서 벗어나 제주의 특색이 오롯이 담긴, 특별하지만 유명하지 않은 장소들을 찾아갔다. 사진가 김영갑 선생이 사진을 찍었던 중산간 마을과 제주신화가 여전히 숨쉬고 있는 혼인지, 화산폭발로 용암이 흘러넘쳐 기이한 지형을 이룬 안덕계곡과 방선문, 정치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의 삶과 자연을 파괴하는 안타까운 반복의 현장 강정마을과 4.3 평화공원 등을 돌아보면서 관광지나 여행지가 아닌 제주를, 조금씩 더 깊이 사랑하게 됐다. 정신없이 바쁜 뉴스 에디터 일을 그만두고 좀 더 한직으로 돌면서도 제주를 삶에서 떼어놓을 수는 없었다. 계절마다 한 번 씩 비행기표를 끊다가, 그 간격은 두 달, 한 달, 2주로 줄어들어갔다. 그러다 마침내 2009년에는 출판사의 제의로 제주사진산문집을 쓰게 되어 마침내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에 내려와 살게 됐다. 제주는 내 일의 휴식지에서 내 삶의 거처로 변모했다.
책에도 썼지만,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대상은 물론 결국은 제 자신을 들여다 보게 되는 일이다. 서울 토박이로 태어나 서울의 그럴듯한 고등학교와 대학교, 번듯한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추구했던 것들은 대개 허영이거나 남들을 따라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큰 아파트에 살고, 중형차를 굴리며, 일주일에도 몇 번 씩 백화점과 쇼핑센터를 누벼야만 행복해 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더 명백해졌다. 바람 부는 오름의 능선, 옥빛 물결이 모래를 말갛게 씻는 조그만 바닷가, 반딧불이가 공중에 선을 긋는 저녁의 고샅길, 초록의 변주가 온몸을 휘감는 한라산의 한낮, 플라네타륨(Planetarium)처럼 별판이 모조리 켜지는 우도의 한밤… 그 속에서 나는 온전히 행복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땅의 다른 곳과는 계절감이 확연히 다른 이 섬이 내는 특유의 먹거리들에도 스스럼없이 친숙해졌다. 크고 이름난 맛집이 아니라 섬이 지켜온 역사처럼 오래 붙박여 살아온 사람들이 이웃들을 챙기면서 제 삶까지 가꾼 소박한 식당들과 가까워지게 됐다. 책에서 소개하는 여행코스나 식당들도 바로 그런 곳들이다.
책에 소개하지 않은 곳 가운데 표선해수욕장이 있다. 제주도에서도 가장 넓은 모래사장을 품고 있는 표선은 해안선을 따라 한 바퀴 걷는데만도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광활한 바다다. 썰물 때면 사람들은 신발을 손에 쥐고는 물이 빠진 대형 축구장만한 부드러운 모래밭을 발자국을 남기며 수평선까지 걸어볼 수 있다. 새벽녘이면 크넓은 해수욕장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안개에 뒤덮인다. 표선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바다다.
표선은 작지 않은 읍내를 가까이에 둔 전형적인 바닷가마을이었다. 그러다 몇 년 전, 대기업 리조트가 세워지면서 상업의 비린내가 동네에 빠르게 침투해 들어왔다. 가장 싼 식사메뉴가 만원을 홋가하는 식당도 생기고, 양식 생선과 곁반찬으로 한상 차려내고서는 계산서에 15만원씩 적어놓는 횟집들이 늘어난다. 낮은 지붕의 오래된 민박과 제주 전통 음식들을 고집하는 낡은 밥집도 있지만 표선에서 그들은 이제 뒤로 비껴 서 있다.
그럼에도 제주가 좋은 곳인 까닭은 자본과 非자본이 아직 공존하고 있다는 데 있다. 휘황한 도시의 너머에는 바다가 여전히 쪽빛 물결을 출렁이고, 쭉 뻗은 도로를 10분만 달리면 산자락과 오름이 살가운 곡선을 드리운다. 바람은 돌틈 사이를 빠져나와 버스의 차창을 두들기고, 사람들은 과속하는 자동차들 건너에서도 둥근 입매를 내보인다. 표선 역시 짙은 화장을 덧바른 대형 점포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 삶과 지역을 지켜온 토박이들의 거칠지만 속깊은 가게들이 점점이 빛을 뿜고 있다.
표선의 춘자싸롱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조그맣고 연약한 가게다. 표선읍사무소 부근의 방 한 칸을 세내 간판도 없이 장사하던 할머니는 2년 전, 코끼리마트 앞의 번듯한 점포를 얻어 공간을 넓혔다.이름도 춘자국수로 바꿨다. 질좋은 멸치를 오래 끓여내 오늘 삶은 소면에 붓고 송송 썬 파와 고춧가루 한움큼을 뿌려선 양은냄비에 담아내는 국수 한 그릇은 메뉴판을 확인하고서 깜짝 놀랄 정도로 저렴하다.
면적을 키웠다고는 하나 농담으로도 크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게는 점심을 전후한 두어시간 동안은 합석이 필수다. 서너 시쯤 점심 손님들이 빠진 후 가게를 들러 국수를 주문하면 의의로 상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할머니가 국수를 새로 삶아 내주는 까닭이다. 점심 장사야 찾는 이들이 많으니 미리 삶은 소면을 준비할 수 밖에 없지만, 그때가 지나면 가능한 적은 양만 삶아 맛이 살아있는 국수를 손님 앞에 내놓고자 하는 것이다. 속도 모르는 이들은 국수 한 그릇이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고 철없이 할머니를 채근하지만 말이다.
제주에서도 나는 가끔 내가 사는 세상이 싫어진다. 조용한 해촌에서도 불콰하게 취해 종업원을 괴롭히거나 모래밭에 욕지기를 하는 관광객들, 세미나인지 워크샵을 와서는 상사랍시고 부하 직원들에게 술잔을 돌려대는 직장인들, 중국산 양식활어를 가져다가 근해 자연산 희귀어종이라며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씌우려는 상인들, 렌터카로 바닷가를 한번 휙 가로지르고는 별로 볼 것도 없다며 쓰레기나 버리고 가는 사내들... 돈은 어쩌면 이토록 끈질기게 섬의 구석까지 따라붙는 것일까.
환멸과 쓸쓸함에 섬에 온 시간마저 움푹 괴어 무거울 때, 치료약은 딱 한 가지다. 춘자싸롱의 국수 한 사발. 표선읍사무소 4거리를 찾아가 작고 헐한 가게, 샷시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는 할머니께 "멸치(국수) 하나요"를 외치는 것 뿐이다. 그러면 할머니는 국수가 아닌 정성을 한소끔 삶아, 시지 않은 깍두기 아니 잔정을 곁들여 아득하고 삭막해진 가슴 앞에 가만히 내려놓으실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저 시치미를 떼고, 후루룩 후루룩 국수를 삼키고 국물을 비우면 된다. 가게를 나올 즈음이면 가게의 반투명 창으로 비치던 햇살처럼 말갛게 마음이 개어 있을 테니. 나는 그 진료비와 약값으로 천원짜리 두어 장만 내면 된다. 그 병원은 웬만해선 쉬지도 않는다.
말이 길었다. 알지 못하는 이유로 제 삶이 출렁거린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아직 스스로의 삶을 부릴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들에게 나는 일렁이는 제주의 감람색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 거문오름의 깊숙한 곶자왈 지대에 데려가고 싶다. 춘자싸롱의 멸치국수 한 그릇이나 항구식당의 자리물회 한 대접, 종달리의 조개국수 한 사발을 내놓고 싶다. 당신은 그 앞에서 다만 아연하거나 질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아름다움은 우리 삶을 움직인다는 걸. 그로 인해 우리 삶도 더불어 아름다워진다는 걸.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은 내 권리일 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다시 전해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다는 걸. 그리하여 아름다움은 우리 세계의 비밀이라는 것을, 경험한 자들만이 소곤소곤 서로 통하는 지상의 종교라는 것을.
아직 이 특별한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이들에게 성심으로 제주여행을 권한다. 다른 준비물은 전혀 필요치 않다. 당신 자신의 눈으로, 다만 설렘을 지니고 섬을 가만히 바라보시기를.
행운을 빈다.
[제주 풍경화]
http://www.yes24.com/24/goods/3746150


김경 선배가 어여삐 여긴 글이라니... 역시 좋군요.
오랫만에 이번달 바자코리아를 사야겠다는... ^^
덕분에 김경기자님과 점심도 같이 먹었어요. 전 정말 오랜만에 청담동엘 다녀왔는데...커피 한 잔 값이 1만원이 넘는 까페가 수두룩하더군요. 하마터면 코 베일뻔 했어요. ^^;
여기서 제주만큼의 위안을 얻고 간다면 아첨이련가요..ㅋ
정현아범님께서 왠 과찬을... 날이 무덥습니다. 온다던 장마는 소식이 없고 주중에 소나기 좀 떨어진 후 또 열렬히 땡볕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은 체력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아요. 정현아범님, 건강 꼭 챙기세요.
멸치국수의 구수함이 그리운 날입니다. 항상 꿈을 꿉니다. 제주의 하늘을 바라볼 날을 기다리면서......
손통님 소식을 요새 블로그에서 볼 수 없어서...안부가 많이 궁금합니다. 별 일 없으시죠? 내일모레면 7월...여름 휴가에 제주 한번 내려가셔야죠? 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