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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읍별사(井邑別詞) - 2010년 4월 정읍 벚꽃여행 (9) 2010/04/23

 민들레 작은 꽃씨 하나가

  만리 허공 밖을 헤매이다가

  어디메 묵정밭에 떨어져서

  눈부시게 눈부시게 피어나거든

  그게 바로 너인가고 여길지니
    - 박정만, <정읍별사 2> 중에서




지난주 목요일, 정읍에 다녀왔습니다. 전주와 광주 사이, 인구 9만의 크지 않은 소읍인
그곳은 시인 박정만의 고향이기도 하고, 소설가 신경숙이 고등학교를 나온 곳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제게는 친한 형님의 본원으로 더 가까이 느껴지는 곳이지요.

그동안 저는 전라도의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계절에 한 번 씩은 전주에 들렀고, 몇 년 에
한 번 정도는 광주에 다녀왔으며, 친구의 흔적을 따라 익산에, 몇 년 전에는 앞서 얘기한
형님과 같이 해남엘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또, 친구들과 남도답사를 떠난 적도 있지요.
몇 번 밝힌 적이 있지만 저는 언젠가 전라도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쓸 거에요.
그건 당장의 일은 아니어서 지금은 기회나 인연이 닿는 대로 가볍게 여행을 다녀오곤 합니다.

정읍은 이번이 두 번 째에요. 이전 한 번은 형님 댁에 큰 일이 있어 급하게 들른 기억이 있지만
다른 경황이 없어 인사만 드리고 온 것이라 제대로는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겠네요.

당일치기 여행으로 계획하고 떠난 이번 정읍은 오직 벚꽃을 보러 간 길이었습니다.
네, 남자 둘이서 꽃나들이를 갔다온 거죠. 나이가 들면서 이상할 정도로 점점 더 꽃이나 나무,
새나 아이들이 좋아져요. 그리하여 다른 용건 없이, 정읍 천변에 벚꽃이 가득해 이 세상에
그처럼 아름다운 곳이 없다는 풍문에 혹해 새벽에 용산역에서 무궁화로를 집어탔습니다.

형님의 후배가 차를 가져와 정읍의 바깥까지 구경을 시켜 준 덕분에 돌아오는 길이 조금
늦어져 형님의 본가에서 하루를 묵었어요. 하루종일 차를 태워주고, 목을 축여주고, 좋은 곳을
데려가주며 꼼꼼하게 설명해 준 그 후배님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저도 그런 후배가,
친구가, 선배가, 동료가 되었으면 해요. 계산에 빠르지 않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들을 해주는
따뜻한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를 살피고 바꿔 나가겠습니다.

제 낡은 DSLR을 가져가 사진을 좀 찍었어요. 이 사진들이 코니카미놀타 Dynax 5D로 찍은
마지막 사진들이에요.

6백만화소의, 계조가 무너지고 화이트홀이 자주 생기며, 번번히 렌즈를 인식하지 못하는
제 첫 번 째 DSLR, 너도 수고 많았어. 이제 기록용이 아니라 생활용으로, 아이 사진을 찍으며
좀 더 여유로와 지렴.

2010년 4월 16일 금요일, 정읍 사진들과 일부의 고창읍성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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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 새벽 광주행 무궁화호는 좌석에 여유가 있었어요. 편도 18,600원. 예약하지 않아도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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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읍에 도착하자마자 형님이 데려간 굴 전문 식당. 굴밥 정식과 굴 순두부를 시켰는데... 굴이 아주
   실할 뿐더러 그 때문인지 맛이 아주 진했어요. 제가 먹어본 굴 음식 가운데 단연 으뜸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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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먹고 나자 본격적으로 나들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봄이 내리는 연초록 길을 함께 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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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는 흐린 편이었지만 그 덕에 덥지 않아 걷는 길은 내내 시원했어요. 길 끝 저 너머가 정읍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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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구석구석에 깃들이 온 천지엔 야생화들이 가득하더군요. 노랗고 푸른 빛이 참 예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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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을 내려오니 바로 동네로 통하는 길...차는 지날 수 없고 사람만 오갈 수 있는 오래된
   골목들이 아늑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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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다 만난 어느 집 모퉁이에서...왼쪽 창틀 안에 보이는 게 뭔지 아세요? 닭을 집안에서 기르더군요.
   우리를 보고 꼬꼬 거리는 데 얼마나 신기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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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간 형님도 놀랍다며 한참을 들여다 보셨어요. 안에는 닭이 여러 마리 있었던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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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골목에서 만난 한 교회.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는데 계단길이 까마득하더군요.
   여름날 저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올라 교회에 다다를라 치면, 자연히 "주여!"가 나오겠지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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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읍의 천변이 시작되는 곳. 다리 양 옆으로는 모두 벚꽃의 열병식(閱兵式)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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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벚꽃길은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꽤 붐볐어요. 소풍 왔던 유치원 아이들이 귀여워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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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2차선 도로를 끼고 양 옆이 가없는 벚꽃길... 한 시간을 넘게 걸어도 끝나지 않는 벚나무들의 장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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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벚의 분홍은 저토록 화사하면서도 동시에 우아할까요. 저는 고개를 들고 하염없이 꽃들을
   바라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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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다 가게이름이 재미있어 찍어둔 사진. 전라도에서는 '거시기'가 다양한 의미로 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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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나온 트럭이 햇빛을 피하도록 잠시 꽃그늘을 덮어준 한 나무. 참 보드라운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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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의 군무는 계속 이어졌지요. 정말 사진을 많이 찍을 수밖에 없었어요. 아름다움은 그걸 지켜본
  이들에게 의무를 갖게 하지요. 아주 따사로운 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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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한 순간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을, 평생을 두고 감사하게 되는 일이 있지요. 그래요. 이건 하나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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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벚꽃길에는 유혹이 많았어요. 장터가 서질 않나, 대낮부터 파전과 막걸리, 동동주를 헐값에
  유혹하질 않나... 참느라고 힘들었어요. 주(酒)여,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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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가 되자 구름이 걷히면서 날씨가 개더군요. 환한 가운데 벚나무들의 자태는 더욱 찬란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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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똑바로 서지 않아도, 같은 모양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 우리는 원래 각기 다 아름다운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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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네길의 공식 명칭 자체가 '벚꽃로' 더군요. 다른 이름을 붙일 수가 없었겠지요. 어차피
  벚꽃길로 불릴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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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 나들이를 끝내고 정읍의 구(舊) 시장으로 들어왔어요. 고속/시외버스 터미날에 자리한 시장이
  신(新) 시장, 벚꽃길 천변 옆의 오래된 장터가 구(舊)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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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구(舊) 시장도 활기를 잃지 않고 살아있더군요. 여기서 장사하시는 분들은
  다 정읍 토박이들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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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의 어머님이 운영하시는 가게에서 한 컷. 이날은 먼 데서 조카 결혼식이 있어 가게를 닫으셨어요.
   호떡 3개 천원. 2천원 어치를 사면 7개를 주신다고. 깜짝 놀랄만한 가격. 맛도 정읍 으뜸이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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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이 정읍의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셨지요. 서울엔 거의 멸종해 버린 음반가게가 정읍에선
  역사를 지키고 있더군요. LP, CD, 카세트 테이프 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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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다리를 쉬러 들른 정읍 시기동 성당. 작지만 편안해 보이는 천주교회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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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읍의 유명한 헌책방, 서울서점에서. 형님은 이곳 단골이면서, 주인네 이웃이기도 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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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배가 트럭을 몰고 마중을 나왔습니다. 아주 순한 사람이었어요. 이후부터는 그가 안내를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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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데려간 곳은 정읍의 큰 산인 방장산. 봄 기운 물씬한 계곡을 알려주더군요. 품이 넓고
  조용해서 꼭 빨려들 것만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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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는 키 큰 나이든 소나무들이 가득. 그 곡선이 유려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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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계곡은 놀랍게도 개인 소유라고. 농사짓는 노인 부부의 것이라는데... 특별한 취미가 많으신 듯
   신기한 모양의 트럭을 갖고 계시더라구요. 아마 아주 오래된 미제 트럭이 아닌가 싶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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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는 한참을 달려 고창으로 향합니다. 트럭이 멈춘 곳은 고창읍성. 저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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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적(外敵) 방비를 위해 쌓은 곳이라는데...그 규모가 엄청났어요. 성벽을 따라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운치를 더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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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을 쌓은 축성미(蓄城美)나 성의 외곡선 모두 하나하나 음미할 맛이 나더군요. 해질 무렵 늦게 도착한
   일이 한스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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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고적한 맛은 옛 건축의 특징인 듯 해요. 인간이 만든 것과 자연이 만든 것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튕겨 밀어내지 않는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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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밖뿐 아니라 성안에도 이렇게 길이 포근하답니다. 고창읍성 나들이만 2~3시간 정도
  잡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시간에 쫓기면서 다니기는 너무 아까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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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안의 언덕배기들에도 오래된 소나무가 가득...아름이 굵어 제 한 몸으로는 다 껴안을 수 없는 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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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흙길을 시멘트로 덧발라놓았을 뿐인데도 걷는 일이 한 옥타브 더 즐거운 것은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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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모자람을 거듭거듭 아쉬워하면서도 들어왔던 성문깨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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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문을 나서기 전에 가까이 당겨서 한 컷. 외벽의 곡선과 건물의 직선이 정말 잘 어울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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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럭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쉬워서 한 컷...멀지 않은 때 다시 올 거에요. 잊지 않으리, 고창읍성.




비가 몰아쳐서 사라진 바다를 내다 보고 있자니 어떤 생각이 상기되려 한다.
세상의 어딘가에는 바다를 건너는 다리가 놓여있다고 한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나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자동차 통행이 금지되는 다리가. 누구? 그 다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누구? 바람이 많이 불어, 혹은 비가 많이 내려 통행이 금지되는 바다 위에
놓인 다리. 아무도 지나지 않는 데 홀로 비바림 속에 놓여 있을 바다 위의 다리,
왜 그 다리 생각이 나는지. 당신은 바람이 많이 불어 통행이 금지된 바다 위 다리
건너에 있다. 언젠가 나는 당신이 거기 있다면  어찌하여도 그 다리를 건너야 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 것 같다.
   - 신경숙, "기차는 7시에 떠나네(문학과지성사, 1999)" 중에서






 


                * 이 모든 사진은 마지막으로 코니카미놀타 Dynax5D, 무보정 리사이즈, 언제나 그렇듯이.

2010/04/23 19:12 2010/04/23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