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했음'이나 '잘 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할머니는 마녀를 닮았다'라고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고 부른다' 라고 써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번병은 친절하다'라고 쓴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번병이 우리가 모르는 심술궂은 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만 써야 한다. '당번병은 우리에게 이불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또한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좋아한다'는 단어는 막연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 '호두를 좋아한다'와 '엄마를 좋아한다'는 같은 의미일 수가 없다. 첫번째 문장은 입 안에서의 쾌감을 말하지만, 두번째 문장은 감정을 나타낸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까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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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은 '작은 이야기'를 다루면서 결국 '작은 이야기'의 범주를 넘어선다. 위의 소설도 그렇다.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이야기, 소설이라는 형식을 넘어서려는 이야기들, 걸작들이 정말 많구나.
정말 전 이 작품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_<
세상에 숨은 걸작들이 정말 많은 것 같어요.. ㅎㅎ
시나몬님 덕분에 찾아읽게 되었어요. 3부작이라고 들었는데 각각 별개의 작품인 것 같더군요. 소설이 점점 더 '지금 여기'와는 무관한 감정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최근 몇 년 간 각인된 생각이었는데 작년부터 읽은 책들, 지인들이 추천해준 책들이 그 선입견을 깨는 걸작들이네요. 감사할 따름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