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에 해당되는 글 6건

  1. 제주항공권 반값 할인 이벤트 2010/11/26
  2. [해양국토21] 당신이 잊어버린 푸른 도화선 (4) 2010/10/16
  3. 3번째 교정 (12) 2010/09/13
  4. 출렁이는 당신에게, 일렁이는 감람색 바다를 (6) 2010/06/25
  5. 문득 (4) 2010/06/11

* 2010년 11월 25일 한국일보 기사 : "제주, 반값에 모십니다" 항공업계 할인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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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비수기를 맞아
제주를 오가는 항공사들이 일제히 '반값 경쟁'에 뛰어들고 있네요.
대부분 평일 항공권에 한정되어 있고,
시간도 너무 이르거나 늦다 싶은 게 많지만
올해 연차 휴가가 많이 남으신 분들,
연말연시를 제주에서 보내시고 싶으신 분들,
방학을 맞이하는 학생분들께는 꽤 좋은 소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겨울철이라서 여행가기엔 너무 춥지 않을까 망설이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겨울의 제주는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이 따뜻합니다.
섭씨 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두꺼운 패딩 점퍼는 챙기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모자 정도는 챙기셔도 좋을것 같아요. 머리칼이 온통 날리거든요.

다만 바람이 좀 부는 편이니까... 아무래도 겨울 여행은 버스를 이용하기 보다
택시나 렌트카를 이용하시는 게 편리합니다. 스타렌*카 등이 렌터카를 빌리면
자차보험을 무료로 가입해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안전하게 이용해 보시구요.

겨울에 가볼 곳은 한라산(긴 등산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왕복 45분 정도의 어승생오름을 추천!),
돔베낭길과 외돌개 올레길, 이중섭 미술관과 김영갑 갤러리, 절물휴양림,
표선해수욕장이 그만이라 할 수 있지요. 따뜻한 서귀포에서 겨울 휴가를 보내시면
겨울이 아직 남쪽까지는 내려오지 않았구나 실감하시게 될 거에요.

그럼, 행복하고 가벼운 제주여행되세요.
저도 올해는 시간이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한번 가능한 날짜를 세어봐야 겠어요.
즐거운 12월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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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남원 큰엉, 바다를 따라 이어진 절벽산책로입니다. 걷기 참 좋은 길이지요. KM D5D 무보정 리사이즈.










 



2010/11/26 09:27 2010/11/26 09:27

지난 여름, 국책연구기관 한 곳에서 전화가 걸려왔더랬어요. 연락을 주신 분은 그곳의 한 본부장님.
제 책을 읽었고, 좋았다면서 자기네가 계간으로 연구논문을 잡지로 내는데, 유일하게 제 글을
외부원고로 싣고 싶으시다며 원고를 부탁하셨지요. 주제는 딱 하나, "'바다'에 관련된 글이면 됩니다."였어요.
잡지 이름은 '해양국토 21'. 전문지라고 보여지구요. 어제 제 글이 실린 가을호를 받아 봤는데
정말 제 글 외에는 모두 논문과 리포트, 이슈를 다룬 책이더군요.

쓴 지 2개월이 넘은 글이에요. 이번호가 특집호로 나오면서 발행이 좀 늦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당분간 원고를 연재키로 했구요. 다음 원고도 지난달에 마감해 보냈습니다. 그 원고는 '몽산포'에 관한 글이에요.

가을호에 실린 원고를 여기에 게재합니다. 매수가 많아 원고가 좀 긴 편입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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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국토21 잡지 표지. 연구지답게 담백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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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꼭지만 컬러입니다. 사진도 많이 실어주셨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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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제 원고만 빼고는 모두 다 논문이에요. ^^; 잡지쪽에서는 처음으로 비논문 원고를 받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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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 식당 등 여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도 함께 실었습니다.



당신이 잊어버린 푸른 도화선

 

- 정원선(‘제주 풍경화저자, noside@empal닷컴)

 

 

여름은 뜨거워야 제맛이다, 라던 직장동료가 있었다. 겨울과 봄, 가을 세 계절 내내 죽 한 그릇 못 얻어먹은 얼굴로 비실비실거리던 그는 매년 5월 말만 되면 환한 얼굴로, 드디어 여름이 온다! 라고 의기양양하게 소리치곤 했다. 그때 우리가 맡은 업무는 포털사이트의 헤드라인 뉴스를 편집하는 것이었는데, 일 특성상 24시간 휴일없이 돌아가야 하는 작업이어서 여름휴가도 팀원간 협의를 통해 결원이 생기지 않게끔 릴레이하듯 날짜를 조정해야 했다. 그때 나는 막 뉴스파트를 책임지게 되어서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던 데다가, 동료들이 앞다퉈 휴가를 먼저 쓰겠다고 주장하는 통에 내 휴가는 맨 끝으로 밀려버리고 말았고, 더군다나 여름이면 항상 체력이 고갈되어 더위를 못 이기고 병든 닭마냥 축축 처지는 형편이라 이래저래 짜증이 솟고 미간이 답답해 딱히 이유도 없이 그가 미워지곤 했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은 원래부터 불공평한 것을.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쳇바퀴를 돌고 무슨 일이라도 터질라치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야근을 감수해야 하는 갑갑한 직장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여름만큼은 직장생활도 할 만 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환경에다, 더위 때문인지 윗분들이건 아랫사람들이건 다들 일찍 퇴근하는 통에 저녁이면 고요한 사무실에서 친한 동료들과 캔맥주를 부딪히면서 한숨 돌리는 재미가 있었던 까닭이다. 부서 동료들은 상하를 막론하고 모두 서른 이쪽저쪽의 연령대여서 다들 격의없이 가깝고 정이 두터웠다. 딱 한 명, 여름을 좋아하던 그 친구만 빼고.

 

지금이야 책을 내고, 원고를 쓰며 살아가는 저자 신세가 됐지만 그때 나는 당시에 하던 일을 평생 잇게 될 줄 알았다. 벤처기업에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정리해 보내는 일부터 시작해, 중급 규모의 검색사이트에서 뉴스를 편집하다 이직을 통해 대기업 포털로 회사를 옮긴 때였다. 계열사를 가진 큰 회사가 주는 장점-적지 않은 연봉과 안정성, 그리고 어디서나 이름을 대면 알아봐 주는 브랜드 가치까지 포함한-에 이곳에 뼈를 묻어야지 까지는 아니어도 가급적 오래 다녀야겠구나 열심히 해야지 하는 기특한 마음이 들던 시절이었다. 전과 다르게 상하관계가 엄정했고, 지켜야 할 수칙이나 예의가 늘어났지만 매달 25일 통장에 찍히는 새로운 숫자와 기업 뱃지를 달고 나가면 주위에서 쳐다봐 주는 야릇한 보람에 취해 힘든 줄 모르고 일에 몰두했다.

 

딱 그때가 내가 제주에 빠져들기 시작한 즈음이기도 하다. 갑자기 불어난 급여와 대기업 답게 복지체계가 좋아 일년에 몇 일 씩 추가로 주어지던 특별휴무로 인해 나는 막 여행에 눈 떠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차를 사고 서울 근교를 드라이브하는 일부터 시작해 움직이는 범위가 차츰 넓어졌다. 강화도, 양수리, 청평, 대천, 속초, 전주, 안면도, 부산, 목포, 통영, 남해주말이나 휴일이면 이 땅의 이곳저곳을 다녔다. 나는 젊었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세상에서 두 번 째로 즐거운 일은 여행을 다녀온 뒤 그 여정과 소감을 꼼꼼히 기록하는 것이었고, 첫 번 째로 행복한 일은 그 다음 여행을 책이나 인터넷 정보를 뒤져 세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이었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자고 그 고장의 음식을 먹고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무지 물리지 않는 근사한 체험이었다.

 

그러다 제주에 가게 됐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항공-호텔-버스여행 패키지로 여행사 가이드를 따라 뻔한 코스를 우르르 몰려다니는 관광이었는데, 모든 일정을 마치고 버스가 호텔에 데려다 준 저녁시간 이후, 멋대로 낯선 거리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뜻모를 사투리를 써대는 섬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행복했다. 밤이면 돌아와 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낡은 호텔에 머물렀는데, 그때 본 바다는 낮에 관광객들과 몰려다니며 걸었던 그 바다와 완전히 달랐다. 인적이 끊긴 도로와 어두워진 네온사인 너머에서 비로소 가벼워졌다는 듯 부드럽게 밀려왔다 천천히 쓸려나가던 파도, 온통 캄캄한 사위 가운데 아득히 먼 데서 수평선을 비추던 갈칫배의 온화한 불빛, 장난치듯 수면 위로 튀어오르던 이름모를 물고기들, 물결 위에 세밀한 무늬를 새겨넣는 섬 특유의 장난끼 가득한 바람다음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빠듯한 일정이 잡혀있었지만 잠드는 일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져 눈을 감지 못한 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그때 본 바다가 계속 머리 한 켠에서 찰랑거렸다. 좋아하는 이들과 오랜만에 만나 기분좋게 술잔을 부딪힐 때에도 마음 속에는 늘 섬의 바람이 불어왔다. 다시 가야겠구나. 갈 수밖에 없겠구나. 중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뒤로 주말과 휴가를 가릴 것 없이 제주를 찾게 됐다. 매주 월요일이면 나는 늘 항공사 사이트에 들어가 왕복 비행기편 예매 상황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인터넷서점을 통해 제주에 관련된 각종 책들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섬으로 떠날 수 없는 주말이면 도서관을 찾아 섬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온갖 기록물을 읽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제주는 중심이 아닌 변방이었던 터라 그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이 드물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블로그 같은 개인기록이 웹으로 검색되면서 소소하지만 귀중한 섬의 습속과 생활을 보다 생생한 육성으로 찾아볼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됐다.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서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시게 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과는 모두 마찬가지다라고 쓴 적이 있다. 누군가가 특정한 지역을 사랑하게 되는 일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내가 제주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두루두루 다양하게 댈 수 있다. 동그란 자갈돌 사이를 스미면서 차가라락 거리는 알작지의 몽돌바당, 캔디바를 물에 녹여놓은 것 같은 김녕해변의 선명한 초록 물빛, 해가 떨어지는 비양도의 그림자를 받아안는 협재 바다의 보드라운 품, 여름에도 맨 몸으로 맞서기 힘든 중문의 어기찬 물살과 눈부신 흰 빛으로 바다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우도의 서빈백사 해변그러나 그 모든 것은 내가 그저 나중에 갖다 댄 근거에 불과하다. 사랑에 빠지는 데는 이유 같은 건 필요없는 법이니까. 시작에는 여러가지 핑계가 있지만 결과는 모두 마찬가지니까.

 

그리하여 나는 모든 계절에 제주의 곳곳에 서 있게 됐다. 정기적으로 동일한 장소를 찾게 되면 그 곳이 가진 매력과 시간의 변화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꾸준히 공부를 해온 데다 장소에 대한 내력과 세월의 변화를 덧붙여 알아가게 되면서 나는 돌이킬 수 없이 점점 더 섬에 빠져들었다. 모든 바다를 찾아다녔을 뿐 아니라 한라산과 오름과 중산간 마을을 거닐고, 숲과 길과 동물들과 수목들을 찍고 쓰고 공부하고 정리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투리를 익히고 그 섬의 일간신문을 구독했다. 회사에서도, 블로그에서도 제주 매니아로 불리기 시작했다. 제주가 고향인 지인과 대화를 나눌 때도, 예를 들어 보목포구에 자리잡은 자리물회 전문식당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면 내 머리 속에는 자동적으로 그 집 구조와 메뉴판이 그려지고 그 주변 명소들과 가는 길이 더불어 눈 앞에 펼쳐지는 지경이 되었다. 그 지인에게 그간 바뀐 풍경과 새로 연 또다른 식당을 가르쳐주게 될 때도 있었다.

 

햇살이 타오르듯 뜨겁게 내리쬐며 높은 습도와 더불어 불쾌지수를 한움큼 끌어올리는 여름, 도시의 한복판을 거니는 일은 힘들다. 셔츠 안쪽으로 땀이 배이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버스와 지하철은 풀가동한 냉방장치에도 비롯하고 찜통으로 변하기 일쑤다. 별것 아닌 일에도 발칵 신경질이 나고 까닭없이 예민해 진다. 차가운 음료를 입에 물고 있어도 그때 뿐이고, 퇴근 후 맥주 한 잔은 잠깐 시원하지만 잠자리에 들고나면 마실 때 그만큼 더 체온을 덥힌다. 여름은 참 답이 없는 계절이다.

 

그 좋아하는 제주여행도 여름만 되면 난감해 지곤 했다. 일단 휴가철, 방학철인 탓에 비행기편을 구하는 게 한층 더 까다롭게 되고, 교통편은 물론 숙소, 렌트카는 성수기 요금을 책정해 평소보다 2배 이상의 값을 지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그처럼 어렵게 비용과 수고를 감수하고 제주 바다에 닿았더라도 해수욕장의 담합된 바가지요금에 얼굴이 찌푸려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름난 식당은 미어터지며, 서귀포시와 제주시는 서울처럼 교통체증이 일어나고, 조용하던 해변은 새벽 무렵까지 욱신거린다. 그런저런 이유로 여름은 제주를 찾는데 망설임이 드는 계절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름은 제주의 날것 아름다움을 가장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몸에 닿아오는 감람색 바다의 서늘한 물살, 오름 위에서 땀을 식혀주는 바람, 길에서 만나는 새와 곤충의 농익은 연주, 스펙트럼을 최대한 넓혀 사물의 존재감을 더없이 선명하게 밝혀주는 햇살의 장력제주의 여름은 정말 아름답다. 그때서야 나는, 그 직장동료가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를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내 견해를 가지면서도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데에는 명확한 이유는 없어도 반드시 그럴만한 구석이 있는 법이니.

 

여름철 제주의 각별한 즐거움을 경험한 후에 나는 그 직장동료와 조금씩 가까워지게 됐다. 그와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으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로 흥미를 가지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측면이 많았다. 우영창의 우린 서로 다른 것을이라는 詩처럼, 각자 달랐기 때문에 종종 다퉜지만 달랐던 덕택에 서로에게 매료되고 인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와 나는 차츰 절친한 사이로 변했다. 퇴근 후 술잔을 부딪히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이에서, 직장을 옮긴 뒤에도 정기적으로 연락해 만나는 친구로 발전했다. 이제는 내가 제주를 여행할 때 함께 떠나기도 하고, 반대로 그의 여행에 내가 낄 때도 있는 절친한 관계다. 그는 내 약간 과한 농담을 받아들여 주고, 나는 그의 약간 과한 술탐을 이해한다. 어떤 일이건 오래 하게 되면 노하우가 쌓인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각자 우울에 빠졌을 때 상대가 취해야 하는 행동이 뭔지 알고 있으며, 기분좋을 때 추임새를 넣어주는 적절한 시점도 잴 수 있다. 이를테면 여름은 뜨거워야 제맛, 이라고 그가 외치면, 뜨거울 땐 제주 바다 속에 있어야 제맛, 이라고 내가 받아치면 되는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그 변화 속에서 나도 변했다. 아니, 내가 변하고 있는 와중에 세상 역시 변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 다녀야지 하고 생각했던 뉴스 업무를 벗어나 다른 분야로 이직을 했고, 그러던 와중에 승진도 해서 말단 관리직으로 올라섰다. 그 덕분에 시간 여유와 약간의 풍요를 얻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바다가, 섬이, 제주가 목말랐다. 회사 책상에 놓인 모니터 바탕화면에는 늘 바다가 잔잔하게 밀려왔고, 매주 월요일 간부 회의 시간에는 앉은 의자가 섬의 바람으로 들썩거렸다. 섬에 내려가 스텐레스 대접 한가득 담아주는 자리물회가 먹고 싶었다. 소나기 쏟아진 뒤에 한라산에서부터 밀고 내려와 터지는 엉또폭포가 보고 싶었다. 용암이 흘러내려 만든 계곡을 따라 바다에 이르는 안덕계곡과 쇠소깎, 그러니까 불이 낸 물의 길을 거닐고 싶었다. 어느새 과장이 된 여름을 좋아하는 친구와 밤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방파제에서 맥주캔을 부딪히고 싶었다. 창 너머로 바다의 파랑과 숲의 녹색이 출렁이게 두고서는 머리칼을 간질이는 장난기 가득한 바람과 한참을 놀고 싶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세상은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어디에 자신의 닻을 내릴 것인가에 따라 인생이 흘러간다. 나는 후자, 변하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고 나머지 삶을 그에 맞춰 재편했다. 친구가 된 직장동료는 전자, 변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나머지 삶을 거기 맞추며 살고 있다. 선택은 달랐지만 우리는 휴가 때마다 다시 만나고 서로의 가지 않은 길을 확인한다. 거기에 우열은 없고, 각자가 힘든 부분마다 서로의 따뜻한 위로가, 새로이 좋아진 부분에는 기꺼운 북돋움이 더해질 뿐이다. 지금 같은 사이가 오래 지속되길 바라면서. 언젠가 서로의 가족과 아이들까지 함께 데리고 제주바다를 다시금 여행할 수 있었으면 하면서. 싸우거나 토라졌대도 곧 풀어버리고 양보하거나 웃어버릴 수 있기를.

 

올해는 그와 더불어 미리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새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곧 분주해질 그의 사정에 맞춰 좀 이르게 섬을 돌아본 것이다. 흐렸다가 비가 내리고, 다시 개이는 변화무쌍한 사흘 동안의 여행 일정을 추천 코스로 뒤에 남긴다. 바다를 원없이 누리면서, 제철을 맞은 음식과 섬의 별미들을 아우르면서, 산자락과 계곡, 숲을 빠뜨리지 않으면서 거닌 길들이다. 특별히 입장료를 받지 않으면서도 제주만의 특색이 온전히 살아있는 곳들, 여름에 찾으면 가장 좋은 곳들을 망라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와 다닌 곳이니, 지금의 가장 좋은 곳을 보여주고픈 마음을 담은 코스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곳이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비용을 더 들여야만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진짜 자연이나 진정한 맛집은 아니다.

 

서울에 돌아온 지금, 다시 머리 속에는 제주 바다가 출렁인다. 누구에게나 그런 게 있다. 우리가 엉겁결에 잊어버린, 그러나 우리 삶을 한없이 매혹하는 것들이. 한번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인생을 속속들이 태워버릴 수 있는 심지가. 내 경우엔 그것이 바다였고, 제주가 시작이었다. 소중한 휴가, 더위를 피해 당신이 찾는 어느 장소가 예기치 않았으되 피할 수 없는 당신만의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 기대가 없는 인생은 시시하다. 그리고 기대하고 있으며 또한 준비할 수 있는 인생은 황홀하다. 말하자면 이 글은 제주로의 초대장이다. 섬은 당신이 발견하기를 원한다. 인공의 색소 한 점 없이 에머랄드와 샴페인 블루 사이를 일렁이는 푸른 바다를, 매일 밤 하늘 가득히 광활하게 흩뿌려지는 눈부신 별빛을, 오름과 한라산 사이를 굽이치며 가끔 소곤대는 수많은 길들을. 그리고 그 안에서 당신도 몰랐던 당신 자신을 말이다. 권한다, 섬의 생생한 날 것 아름다움을. 지금, 당신에게.

 





2010/10/16 13:20 2010/10/16 13:20

제 책 "제주 풍경화"을 E-Book으로도 만들자는 제의를 출판사로부터 받아 3번째 교정을 보는 중이에요.

오탈자는 2쇄 인쇄 들어갈 때 대부분 고쳤고,
이번에는 그래도 누락된 오자들과 그동안 바뀐 명소들 연락처(종달리 조개국수집, 바당동네 횟집 등)를
개비하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모두 다 고마운 일이에요.
부족한 것들을 곱씹고 깜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올해 내가 해야 할 가장 첫 번 째 것은
그저 '감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아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고마워요. 당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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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2007년 9월, 김녕해수욕장에서 썰물이 모래밭에 남긴 흔적을 찍은 것. KM D5D 무보정 리사이즈.





* Daum 책 "제주 풍경화"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BOK00009923310AL
2010/09/13 00:57 2010/09/13 00:57


2010년 7월호, 패션지 '하퍼스 바자' 특별판 'BAZZAR PURE'에 실린 글입니다.
잡지 그대로를 보시는 게 가장 좋지만, 원고 내용을 눈여겨 보시는 분들도 계시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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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는 당신에게, 일렁이는 감람색 바다를
- 정원선(‘제주 풍경화’ 저자)


  기자와 뉴스에디터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감독이 우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한국과 일본에서 치뤘던 월드컵이 있었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노란색 젊은 대통령 후보가 있었으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때였으니 지금으로부터 7~8년 전이다. 나는 그때 이름을 대면 알만한 포털 사이트의 헤드라인 뉴스를 담당하고 있었다. 정치와 스포츠, 전쟁 같은 여러가지 굵직굵직한 일들을 거치면서 인터넷이 우리 일상과 긴밀하게 달라붙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신문 같은 올드 미디어가 포털 뉴스의 속보와 인터넷 커뮤니티의 소통을 따라잡기는커녕 속수무책으로 시장을 내주면서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아직 20대였던 나는 새파랬지만 그만큼 자신만만했다. 뉴스 하나를 포털 메인 페이지에 올릴 때마다 백만에 가까운 숫자가 실시간으로 그에 반응했다. 그 시절, 내가 취해있던 것은 네티즌들과 함께 꿈꾸던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그저 아주 간편한 소통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때, 매일매일 밤늦게까지 때로는 새벽까지 뉴스를 쉼없이 업데이트해야 했지만 그 일은 이라크 전쟁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즐거웠다. 세상의 변화가 내 손 끝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방송과 잡지 등 여러 곳에서 취재가 들어왔고, 스카우트 제의도 빗발쳤다. 일은 힘들었지만 어깨가 으쓱한 시절이었다. 주말을 내쳐 일하면서도 그게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연봉 인상이나 승진으로 보상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렇지만 몇 년 간 그런 일과가 이어지자, 몸과 마음 양쪽에서 무리가 생겼다. 사건이 생기면 무조건 대기해야 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태에 계속 긴장하며 뉴스를 만들어 내는 일에 알게 모르게 지쳐갔던 것이다. ‘남들처럼’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직장을 옮겨 대기업으로 이직하게 됐다. 옮기고 나니 월급도 크게 오른데다, 그룹사 뱃지가 주는 안정감에 저도 모르게 종종 어깨를 으쓱하곤 했다. 그렇지만 일 자체가 달라진 건 아니었다.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일 없이 연봉만 퍼주는 곳은 없었다. 대기업으로 옮겨와서도 밤낮없이, 주말없이 일하는 패턴은 변함없었다. 결국 나는 주말마다 휴대폰을 끄고 이 땅의 이곳저곳으로 도망다녔다. 고성, 대천, 남해, 속초, 제천, 부산, 목포, 강릉, 변산, 통영… 소심했던 나는 여행지에 도착해 휴대폰을 켜보곤 했었는데, 그 와중에 사건이 터져 여행지에서 PC방을 찾아 뉴스를 원격으로 올려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상사가 휴대폰 음성메시지에 ‘일이 터졌는데 왜 연락이 안되냐’며 욕을 한 뭉텅이 남겨놓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멀리 떠나온 일조차 다 소용없는 것처럼 허망하게 느껴졌고 나는 아무데도 마음놓고 쉴 곳이 없구나, 쓸쓸히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다 제주에도 가게 됐다. 아무것도 모를 때라 항공-호텔-관광이 하나로 묶인 여행사 주말 단체상품을 이용할 때다. 가이드를 따라 45인승 버스에 올라타선 한심하고 재미없는 관광지만 신물나게 돌아다닐 때였는데… 휴대폰이 또 울리는 거였다. 거의 울상을 하고선 전화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상사였다. 일이 또 생겼다면서 나보고 어디냐고 물었다. 제준대요 하고 답했더니 상사는 전과 달리 잠시 말이 없었다. 그뒤로 한참을 머뭇머뭇하더니, 거기까지 내려갔는데 이번에는 좀 쉬어라, 내가 알아서 해보마고 했다. 전화를 끊고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것도 공식적으로 주말에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진 셈이었다. 그후로 버스가 닿는 여행지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제주를 흡입하듯 관찰했다. 이렇게 달콤한 시간은 다시 없을지도 모르니까. 돌 하나, 흙 한 점, 꽃 한 잎, 파도 한 결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 전화 때문에 흥분했는지, 그때쯤 들른 제주의 명승지가 특별히 더 근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그날, 밤에도 눈을 붙이지 않고 숙소의 창 너머 하염없이 제주 바다를 바라보았다. 낮의 떠들썩한 여행지들과는 달리 차분하고 고요한 밤하늘 하래 꼭 쓰다듬어주는 것 마냥 부드러운 음색의 물결 소리가 더없이 황홀해 잠드는 시간 자체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신기하게 그 뒤로도, 상사는 내가 제주에 있다고 하면 더 이상 일에 관련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그 후로는 거의 제주만 다녔다. 몇 번을 내려오게 되자, 내용이 그게 그거인 버스 단체 여행 같은 것은 자연스레 피하게 됐다. 렌터카를 빌려 유명한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도 서너 번이 넘자 렌터카회사에서 제공하는 지도 책자로는 갈만한 곳들이 드물어 졌다. 서울에서 제주도에 관한 가이드북을 사고, 인터넷을 뒤져 안 가본 곳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은 당시만 해도 그렇게 많지 않아 호기심을 채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윽고 나는 제주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찾아읽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제주도 일간지를 구독하고, 제주섬에 관한 것이라면 도서관을 뒤져 현재의 책은 물론 일제시대 기록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러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은 4.3 같은 쓰라린 현대사, 그보다 더 오래 전 제주가 하나의 국가였을 때부터 이어진 뿌리깊은 슬픔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렇게 제주도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상처 입은 제주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자 섬을 여행하는 방법도 조금씩 달라지게 됐다. 육지사람으로서 바다에 대한 무조건적인 ‘로망’에서 벗어나 제주의 특색이 오롯이 담긴, 특별하지만 유명하지 않은 장소들을 찾아갔다. 사진가 김영갑 선생이 사진을 찍었던 중산간 마을과 제주신화가 여전히 숨쉬고 있는 혼인지, 화산폭발로 용암이 흘러넘쳐 기이한 지형을 이룬 안덕계곡과 방선문, 정치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의 삶과 자연을 파괴하는 안타까운 반복의 현장 강정마을과 4.3 평화공원 등을 돌아보면서 관광지나 여행지가 아닌 제주를, 조금씩 더 깊이 사랑하게 됐다. 정신없이 바쁜 뉴스 에디터 일을 그만두고 좀 더 한직으로 돌면서도 제주를 삶에서 떼어놓을 수는 없었다. 계절마다 한 번 씩 비행기표를 끊다가, 그 간격은 두 달, 한 달, 2주로 줄어들어갔다. 그러다 마침내 2009년에는 출판사의 제의로 제주사진산문집을 쓰게 되어 마침내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에 내려와 살게 됐다. 제주는 내 일의 휴식지에서 내 삶의 거처로 변모했다.

  책에도 썼지만,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대상은 물론 결국은 제 자신을 들여다 보게 되는 일이다. 서울 토박이로 태어나 서울의 그럴듯한 고등학교와 대학교, 번듯한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추구했던 것들은 대개 허영이거나 남들을 따라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큰 아파트에 살고, 중형차를 굴리며, 일주일에도 몇 번 씩 백화점과 쇼핑센터를 누벼야만 행복해 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더 명백해졌다. 바람 부는 오름의 능선, 옥빛 물결이 모래를 말갛게 씻는 조그만 바닷가, 반딧불이가 공중에 선을 긋는 저녁의 고샅길, 초록의 변주가 온몸을 휘감는 한라산의 한낮, 플라네타륨(Planetarium)처럼 별판이 모조리 켜지는 우도의 한밤… 그 속에서 나는 온전히 행복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땅의 다른 곳과는 계절감이 확연히 다른 이 섬이 내는 특유의 먹거리들에도 스스럼없이 친숙해졌다. 크고 이름난 맛집이 아니라 섬이 지켜온 역사처럼 오래 붙박여 살아온 사람들이 이웃들을 챙기면서 제 삶까지 가꾼 소박한 식당들과 가까워지게 됐다. 책에서 소개하는 여행코스나 식당들도 바로 그런 곳들이다.

  책에 소개하지 않은 곳 가운데 표선해수욕장이 있다. 제주도에서도 가장 넓은 모래사장을 품고 있는 표선은 해안선을 따라 한 바퀴 걷는데만도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광활한 바다다. 썰물 때면 사람들은 신발을 손에 쥐고는 물이 빠진 대형 축구장만한 부드러운 모래밭을 발자국을 남기며 수평선까지 걸어볼 수 있다. 새벽녘이면 크넓은 해수욕장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안개에 뒤덮인다. 표선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바다다.

  표선은 작지 않은 읍내를 가까이에 둔 전형적인 바닷가마을이었다. 그러다 몇 년 전, 대기업 리조트가 세워지면서 상업의 비린내가 동네에 빠르게 침투해 들어왔다. 가장 싼 식사메뉴가 만원을 홋가하는 식당도 생기고, 양식 생선과 곁반찬으로 한상 차려내고서는 계산서에 15만원씩 적어놓는 횟집들이 늘어난다. 낮은 지붕의 오래된 민박과 제주 전통 음식들을 고집하는 낡은 밥집도 있지만 표선에서 그들은 이제 뒤로 비껴 서 있다.

  그럼에도 제주가 좋은 곳인 까닭은 자본과 非자본이 아직 공존하고 있다는 데 있다. 휘황한 도시의 너머에는 바다가 여전히 쪽빛 물결을 출렁이고, 쭉 뻗은 도로를 10분만 달리면 산자락과 오름이 살가운 곡선을 드리운다. 바람은 돌틈 사이를 빠져나와 버스의 차창을 두들기고, 사람들은 과속하는 자동차들 건너에서도 둥근 입매를 내보인다. 표선 역시 짙은 화장을 덧바른 대형 점포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 삶과 지역을 지켜온 토박이들의 거칠지만 속깊은 가게들이 점점이 빛을 뿜고 있다.

  표선의 춘자싸롱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조그맣고 연약한 가게다. 표선읍사무소 부근의 방 한 칸을 세내 간판도 없이 장사하던 할머니는 2년 전, 코끼리마트 앞의 번듯한 점포를 얻어 공간을 넓혔다.이름도 춘자국수로 바꿨다. 질좋은 멸치를 오래 끓여내 오늘 삶은 소면에 붓고 송송 썬 파와 고춧가루 한움큼을 뿌려선 양은냄비에 담아내는 국수 한 그릇은 메뉴판을 확인하고서 깜짝 놀랄 정도로 저렴하다.

  면적을 키웠다고는 하나 농담으로도 크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게는 점심을 전후한 두어시간 동안은 합석이 필수다. 서너 시쯤 점심 손님들이 빠진 후 가게를 들러 국수를 주문하면 의의로 상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할머니가 국수를 새로 삶아 내주는 까닭이다. 점심 장사야 찾는 이들이 많으니 미리 삶은 소면을 준비할 수 밖에 없지만, 그때가 지나면 가능한 적은 양만 삶아 맛이 살아있는 국수를 손님 앞에 내놓고자 하는 것이다. 속도 모르는 이들은 국수 한 그릇이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고 철없이 할머니를 채근하지만 말이다.

  제주에서도 나는 가끔 내가 사는 세상이 싫어진다. 조용한 해촌에서도 불콰하게 취해 종업원을 괴롭히거나 모래밭에 욕지기를 하는 관광객들, 세미나인지 워크샵을 와서는 상사랍시고 부하 직원들에게 술잔을 돌려대는 직장인들, 중국산 양식활어를 가져다가 근해 자연산 희귀어종이라며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씌우려는 상인들, 렌터카로 바닷가를 한번 휙 가로지르고는 별로 볼 것도 없다며 쓰레기나 버리고 가는 사내들... 돈은 어쩌면 이토록 끈질기게 섬의 구석까지 따라붙는 것일까.

  환멸과 쓸쓸함에 섬에 온 시간마저 움푹 괴어 무거울 때, 치료약은 딱 한 가지다. 춘자싸롱의 국수 한 사발. 표선읍사무소 4거리를 찾아가 작고 헐한 가게, 샷시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는 할머니께 "멸치(국수) 하나요"를 외치는 것 뿐이다. 그러면 할머니는 국수가 아닌 정성을 한소끔 삶아, 시지 않은 깍두기 아니 잔정을 곁들여 아득하고 삭막해진 가슴 앞에 가만히 내려놓으실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저 시치미를 떼고, 후루룩 후루룩 국수를 삼키고 국물을 비우면 된다. 가게를 나올 즈음이면 가게의 반투명 창으로 비치던 햇살처럼 말갛게 마음이 개어 있을 테니. 나는 그 진료비와 약값으로 천원짜리 두어 장만 내면 된다. 그 병원은 웬만해선 쉬지도 않는다.

  말이 길었다. 알지 못하는 이유로 제 삶이 출렁거린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아직 스스로의 삶을 부릴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들에게 나는 일렁이는 제주의 감람색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 거문오름의 깊숙한 곶자왈 지대에 데려가고 싶다. 춘자싸롱의 멸치국수 한 그릇이나 항구식당의 자리물회 한 대접, 종달리의 조개국수 한 사발을 내놓고 싶다. 당신은 그 앞에서 다만 아연하거나 질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아름다움은 우리 삶을 움직인다는 걸. 그로 인해 우리 삶도 더불어 아름다워진다는 걸.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은 내 권리일 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다시 전해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다는 걸. 그리하여 아름다움은 우리 세계의 비밀이라는 것을, 경험한 자들만이 소곤소곤 서로 통하는 지상의 종교라는 것을.

  아직 이 특별한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이들에게 성심으로 제주여행을 권한다. 다른 준비물은 전혀 필요치 않다. 당신 자신의 눈으로, 다만 설렘을 지니고 섬을 가만히 바라보시기를.

  행운을 빈다.





[제주 풍경화]
http://www.yes24.com/24/goods/3746150




2010/06/25 21:39 2010/06/25 21:39


계절이 여름으로 바뀌고, 곧 휴가철이라 "제주 풍경화"가 전달보다 좀 더 팔리는 듯 하네요.
여행책 중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해외여행에 관한 것들이고
국내서 비중은 크지 않은데, 특히 올해 제주여행에 관한 책들이
쏟아지듯이 나오고 있는 중이라 경쟁이 치열하다고 합니다.
제게 또다른 제주여행책 제의를 주셨던 편집자 한 분께서는 지금의 상황을
'밥상 하나에 장정 서른 명이 달려드는 격'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만큼 최근 몇 년 간, 제주가 여행지로서 각광을 받아왔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그게 여행서 시장에서도 정비례한 결과를 낳을 지는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군대 간 자식을 보는 심정 비슷해요.
살아남아주길 간절히 바란다는 점에서 말이죠. ^^;

지금까지는 아주 잘 해 왔어.
더 큰 욕심은 없으니, 제 타고난 바 그대로 세상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렴.




6월 현재 순위입니다.

- 인터파크 도서 : 지역별 여행 1위
- 알라딘 : 신간여행에세이 10위
- 반디앤루니스 코엑스점 예술베스트 6위
- 반디앤루니스 종로점 상반기 여행분야 9위
- 교보문고 상반기 여행도서 8위
- 네이트 책 상반기 여행도서 8위





[제주 풍경화]
http://www.yes24.com/24/goods/3746150
2010/06/11 13:00 2010/06/11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