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토론회와 전체 업무 회의 때문에 이번주는 연이어 서울과 지방을 왔다갔다 했다. 며칠 계속해서
회식을 다니다 그래도 여기 왔는데 싶어 하루 짬을 내 친구와 자리를 만들었다. 자연산 회를 취급하는
저렴한 횟집이 한 곳 생겨 거길 찾아들어갔는데, 마침 남해산 방어가 몇 마리 있었다. 히라스가 아닌
진짜 방어 말이다. 흥정 끝에 2만5천원에 한 마리를 회 치기로 합의하고, 모슬포식으로 먹으려고 안 구운 김을
따로 부탁했다. 산지에서 바로 먹는 것이 아니어서 그 아삭한 질감은 약간 부족했지만 서울에서 방어를
좋은 값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딘가. 내게는 올해 첫 방어인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2010년도
종장을 앞두고 있구나.
방어는 가을 무렵부터 늦겨울까지 한반도 남해에서 많이 잡히는 물고기다. 양식이 불가능하지만
비교적 자원이 풍부하고 개체마다 '덩치'가 커서 서민들의 겨울 밥상에 잘 올라가는 소중한 생선이다.
3kg 한 마리 기준으로 회로 먹으면 1만원(산지)에서 5만원(수도권) 사이, 구이나 조림, 탕용으로
수산시장에서 구입하면 3~4천원(산지)에서 8천원(수도권) 정도다. 앞서 말했다시피 원체 큰 데다
살이 많아서 네 식구가 둘러앉아 도란도란 나눠먹기 충분한 양이다. 맑은탕으로 끓여도 좋고, 김치 넣고
매운탕으로 먹어도 좋으며, 통으로 구워서 먹어도 아주 향긋하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회를 떠 먹는 것이다. 방어는 크면 클 수록 맛있는데, 6KG 이상 큰 것을 부위별로 회쳐 놓으면 그 진미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어떤 부위는 말고기 맛이, 또 어떤 부분은 참치 뱃살맛이 난다. 두껍게 썰어
굽지 않은 김에다 싸 먹으면 싱싱한 사과를 한 입 베어문 것처럼 입안에서 아삭거리고 김의 풍미와
어우러져 방어 특유의 진한 맛이 입안에 확 퍼진다. 겨울날 방어 산지인 제주도 모슬포 식당에 앉아
굵게 썬 방어회 접시를 앞에 놓고 매실주 잔을 비우는 일처럼 행복한 경험은 없다. 그럴 때 나는
말 그대로 '술꾼'이 된다.
제주도에 방어회를 전문으로 내는 식당은 모슬포 주위에 몰려 있다. 그러나 책에 썼다시피, 모슬포는
'못살포'다. 겨울에 찾아가기에는 바람이 너무 심해 춥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 시절 중국도 인정했던
천재, 추사 김정희는 모슬포의 바람을 '독풍'이라고 표현하며 몸서리치기도 했다. 방어는 제주에서
흔한 생선이라 동네 마트만 가도 포장 회를 내놓고 팔 정도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따뜻한 실내에서
슝슝 바람부는 풍경을 내다보며 방어회를 맛 보는 것이 호사일 터인데, 그런 경우 내가 추천할 식당은
딱 한 곳 뿐이다. 책에 적었던 '마라도 횟집'. 교통 편한 제주시에 위치한 그곳은 주인이 모슬포에서
생선을 떼 오는 중개인이어서 모슬포를 제외하면 섬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방어를 낸다.
가격도 아주 좋은 편인데다 방어로 만드는 그밖의 별미들도 함께 맛 볼 수 있어 몇 번을 다시 고려해도
그 집만한 방어전문점은 드물다(교통편, 전화번호 등은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일을 다시 시작했으니 예전처럼 섬에 자주 찾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맘 편하게 기약없이 그곳에
머물 수도 없겠다. 주말을 통하거나 월차를 사용해 2박3일, 길어야 3박4일 내려갈 수 있겠지. 서울은
11월 초부터 이미 겨울이었지만, 섬은 아열대 기후권에 속해 있어 11월 말에도 충분히 따뜻하여
별별 꽃들이 찬란하고, 수풀을 뒤지면 산딸기도 따 먹을 수 있다. 한겨울에도 얼음이 어는 0도 이하로
내려가는 적이 거의 없다. 그 섬은 따뜻하다. 나는 매년 겨울마다 그 섬의 체온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좋은 사람들, 그러니까 프로젝트 NAL 사람들이나 대학친구 J군, K양, A군, 후배 K 부부 등과 같이 며칠
섬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녁에 도착해 고요한 밤바다를 바라보며 더불어
술잔을 부딪히고,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같이 잠들었다가 아침엔 시원한 해장국집에서
머리를 맑히며, 오름과 바다와 숲을 걷다 다시 밤엔 회 한 접시 떠다 놓고 제주술을 마시고, 다시
다음날이면 남들은 모르는 이곳저곳과 섬이 지켜온 음식들을 맛 보다가... 마지막에 공항으로 돌아가기
앞서 그들을 데리고 마라도 횟집에 가고 싶다. 싱싱한 방어회 큰 놈을 서걱서걱 썰어 푸지게 먹이고는
맑은 고소리술 몇 잔을 따라주곤 호기롭게 소리치고 싶다. "제가 낼 테니, 많이 드세요. 술도 음식도
더 시키시구요."
서울에서 올해 첫 방어회를 먹었다. 기대 이상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내 섬 제주에서, 마라도 횟집에 앉아
방어 큰 놈을 다시 맛보고 싶다. 좋은 이들과 함께. 일 때문에, 사정 때문에 미루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내가 필요한 것은 섬의 체온만이 아닌 것 같다.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외로움은 혼자 일 때
일어나는 무엇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 사이에 있을 때 더욱 도드라지는 감정이다.
세상이 자꾸 헛헛해진다. 방어회 한 접시 먹고 별 소리를 다 해본다.
- 제주도 제주시 연동에 자리한 마라도 횟집. 겨울이면 저녁 7시부터는 줄을 서야 한다.
- 이게 제주도 산 대(大)방어. 마라도 횟집에서는 하루에 몇 십마리씩 이런 놈들을 해체한다.
- 마라도 횟집 주인장의 날렵한 칼솜씨. 방어회 말고 꼭 맛봐야 할 것은 메뉴판에는 없는 '방어 튀김'이다.
5천원이면 한 접시를 바로 튀겨서 내오는데...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 이게 방어회 한 접시. 부위별로 맛 보는 사치를 누릴 수 있다. 한 접시에 올해 1월 가격으로 2만2천원이었다.
올랐어도 2만5천원 이하일 것.

- 김치에 말아 먹거나 기름장에 찍어먹고, 김에 싸 먹고...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 맛은 보증한다.
* 모든 사진은 KM D5D, 무보정 리사이즈.


와우, 생생한 회 사진이로군요. 방어란 이름은 처음 듣지만... 아주 괜찮아 보이네요. 저도 제주에 가면 꼭 맛봐야겠습니다. ^^
아주 맛있는 생선이죠. 값도 싸고요. 전 스무 살 넘어서는 점점 더 진한 맛 생선에 맛을 들이게 됐는데...회로 먹는 것 중에서는 고등어와 방어를 가장 좋아해요. 가을, 겨울이 제철인 이 생선들을 산지인 섬에서 먹는 맛은 그야말로 각별하답니다.
아.. 방어..
아... 제주도...
오, 원조군. 오래간만입니다. 별 일 없으시죠?
후후, 제주도는 아니더라도 서울에서 방어 한 마리 같이 먹읍시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말이에요.
이번주에 통영에 가보려 하는데 요즘은 어떤 생선이 좋을까요?? ^^;;;
역시 방어일까요?
(죄송합니다.. 이런걸 물어봐도 되는건지..)
오홋, 부러워라. 시나몬님, 암거나 필요하신대로 여쭤보시면 됩니다(마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같군요 ^^;). 겨울이니 탕으로는 물메기가 딱 이번주부터 제철이고, 또 말할 것도 없이 굴이 포실포실 살찌는 계절이기도 합니다만 '피조개'의 시절이기도 하죠. 기회가 된다면 피조개 회와 탕을 맛보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생선회로는 가자미가 지금 딱일 거에요. 나중에 꼭 후기 포스트로 올려주세요. 사진도 기대하겠습니다.
아.. 친절한 도움말 감사합니다 ㅜㅜ
메모 해뒀습니다 ^^ 가서 아는 척 하면서 고르겠습니다 ㅎㅎ
모르고 가면 맨날 광어와 우럭만 먹다가 와서요 ㅠㅠ
이번에 회를 원 없이 먹겠다는 철없는 희망으로 가려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