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에 해당되는 글 31건

  1. 섬의 눈 (2) 2010/12/16
  2. 제주항공권 반값 할인 이벤트 2010/11/26
  3. 올해 첫 방어회 (7) 2010/11/22
  4. 회향병(懷鄕病) 2010/11/16
  5. [해양국토21] 당신이 잊어버린 푸른 도화선 (4) 2010/10/16

섬의 눈

from 어떤 홀림, 제주 2010/12/16 12:58

섬에 첫 눈이 내리고 있다고, 전화로 지인이 말했다. 그래? 얼마나? 수화기 속에서는 바람이 나부끼고
통화에 끼어드는 잡음은 마치 처벅처벅 눈 밟는 소리처럼 들렸다. 온 길이 눈으로 덮였어. 차들이 엉금엉금
기고 있고... 꽤 쌓일 것 같네. 마음이 울렁거렸다. 항공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티켓을 끊어 퇴근길에
공항으로 직행해 버릴까. 지난 주부터 몸이 계속 섬을 부르고 있다. 아니 섬이 계속 몸을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주지를 바꾸었으며, 낯 설고 물 설은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인데도 섬에의 갈증은
가라앉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 사무실 책상 뒤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면서,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이
제주의 것이었으면 했다. 파도가 방파제를 핥으며 도시를 넘보는 탑동의 광장이거나 한껏 높은 하늘 밑으로
구름이 수직으로 쌓이는 어승생의 마당이거나 눈꽃 알알이 부서지며 떨어지는 절물의 한복판이었으면,
모래가 유실될까 해변 가득 검은 그물로 덮은 너머로 물거품 스며드는 협재나 김녕이기를.

제주시 재난대책본부 홈페이지(http://bangjae.jejusi.go.kr//cctv_snow.html)를 클릭해 본다.
"실시간 영상"이라는 메뉴를 열어보면 '하천감시', '월파감시', '적설감시'라는 소 메뉴가 나오고
이는 각각 '냇물'과 '바다'와 '산자락'을 실시간 CCTV 영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능이다.

적설감시>어승생  을 열어 눈이불 소복히 깔린 한라산 길목을 들여다 보았다. 외로이 선 표지판을
기점으로 양 옆으로 갈리는 도로, 길을 에워싼 숲은 적막하게 겨울을 증명하고 있었다.
월파감시>월정  을 열어 도로가 해안선을 따라 굽이치는 가운데 가만히 모래밭을 쓸어주는 월정리 바다를
본다. 영상에 나타나지 않는 화면 오른쪽에는 카페 '아일랜드 조르바'가 있을 것이었다. 거기서 내주는
뜨끈한 차 한 잔을 감싸쥐고 월정리 바다를 걸었으면 좋겠구나. 마음이 이슥하도록.

올해가 가기 전에 제주엘 다녀와야 겠다. 눈을 감으면 눈물선이 검정을 바탕으로 차올라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리고 천천히 물살을 가를것만 같다.




2010/12/16 12:58 2010/12/16 12:58

* 2010년 11월 25일 한국일보 기사 : "제주, 반값에 모십니다" 항공업계 할인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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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비수기를 맞아
제주를 오가는 항공사들이 일제히 '반값 경쟁'에 뛰어들고 있네요.
대부분 평일 항공권에 한정되어 있고,
시간도 너무 이르거나 늦다 싶은 게 많지만
올해 연차 휴가가 많이 남으신 분들,
연말연시를 제주에서 보내시고 싶으신 분들,
방학을 맞이하는 학생분들께는 꽤 좋은 소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겨울철이라서 여행가기엔 너무 춥지 않을까 망설이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겨울의 제주는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이 따뜻합니다.
섭씨 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두꺼운 패딩 점퍼는 챙기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모자 정도는 챙기셔도 좋을것 같아요. 머리칼이 온통 날리거든요.

다만 바람이 좀 부는 편이니까... 아무래도 겨울 여행은 버스를 이용하기 보다
택시나 렌트카를 이용하시는 게 편리합니다. 스타렌*카 등이 렌터카를 빌리면
자차보험을 무료로 가입해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안전하게 이용해 보시구요.

겨울에 가볼 곳은 한라산(긴 등산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왕복 45분 정도의 어승생오름을 추천!),
돔베낭길과 외돌개 올레길, 이중섭 미술관과 김영갑 갤러리, 절물휴양림,
표선해수욕장이 그만이라 할 수 있지요. 따뜻한 서귀포에서 겨울 휴가를 보내시면
겨울이 아직 남쪽까지는 내려오지 않았구나 실감하시게 될 거에요.

그럼, 행복하고 가벼운 제주여행되세요.
저도 올해는 시간이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한번 가능한 날짜를 세어봐야 겠어요.
즐거운 12월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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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남원 큰엉, 바다를 따라 이어진 절벽산책로입니다. 걷기 참 좋은 길이지요. KM D5D 무보정 리사이즈.










 



2010/11/26 09:27 2010/11/26 09:27

국회 토론회와 전체 업무 회의 때문에 이번주는 연이어 서울과 지방을 왔다갔다 했다. 며칠 계속해서
회식을 다니다 그래도 여기 왔는데 싶어 하루 짬을 내 친구와 자리를 만들었다. 자연산 회를 취급하는
저렴한 횟집이 한 곳 생겨 거길 찾아들어갔는데, 마침 남해산 방어가 몇 마리 있었다. 히라스가 아닌
진짜 방어 말이다. 흥정 끝에 2만5천원에 한 마리를 회 치기로 합의하고, 모슬포식으로 먹으려고 안 구운 김을
따로 부탁했다. 산지에서 바로 먹는 것이 아니어서 그 아삭한 질감은 약간 부족했지만 서울에서 방어를
좋은 값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딘가. 내게는 올해 첫 방어인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2010년도
종장을 앞두고 있구나.

방어는 가을 무렵부터 늦겨울까지 한반도 남해에서 많이 잡히는 물고기다. 양식이 불가능하지만
비교적 자원이 풍부하고 개체마다 '덩치'가 커서 서민들의 겨울 밥상에 잘 올라가는 소중한 생선이다.
3kg 한 마리 기준으로 회로 먹으면 1만원(산지)에서 5만원(수도권) 사이, 구이나 조림, 탕용으로
수산시장에서 구입하면 3~4천원(산지)에서 8천원(수도권) 정도다. 앞서 말했다시피 원체 큰 데다
살이 많아서 네 식구가 둘러앉아 도란도란 나눠먹기 충분한 양이다. 맑은탕으로 끓여도 좋고, 김치 넣고
매운탕으로 먹어도 좋으며, 통으로 구워서 먹어도 아주 향긋하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회를 떠 먹는 것이다. 방어는 크면 클 수록 맛있는데, 6KG 이상 큰 것을 부위별로 회쳐 놓으면 그 진미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어떤 부위는 말고기 맛이, 또 어떤 부분은 참치 뱃살맛이 난다. 두껍게 썰어
굽지 않은 김에다 싸 먹으면 싱싱한 사과를 한 입 베어문 것처럼 입안에서 아삭거리고 김의 풍미와
어우러져 방어 특유의 진한 맛이 입안에 확 퍼진다. 겨울날 방어 산지인 제주도 모슬포 식당에 앉아
굵게 썬 방어회 접시를 앞에 놓고 매실주 잔을 비우는 일처럼 행복한 경험은 없다. 그럴 때 나는
말 그대로 '술꾼'이 된다.

제주도에 방어회를 전문으로 내는 식당은 모슬포 주위에 몰려 있다. 그러나 에 썼다시피, 모슬포는
'못살포'다. 겨울에 찾아가기에는 바람이 너무 심해 춥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 시절 중국도 인정했던
천재, 추사 김정희는 모슬포의 바람을 '독풍'이라고 표현하며 몸서리치기도 했다. 방어는 제주에서
흔한 생선이라 동네 마트만 가도 포장 회를 내놓고 팔 정도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따뜻한 실내에서
슝슝 바람부는 풍경을 내다보며 방어회를 맛 보는 것이 호사일 터인데, 그런 경우 내가 추천할 식당은
딱 한 곳 뿐이다. 책에 적었던 '마라도 횟집'. 교통 편한 제주시에 위치한 그곳은 주인이 모슬포에서
생선을 떼 오는 중개인이어서 모슬포를 제외하면 섬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방어를 낸다.
가격도 아주 좋은 편인데다 방어로 만드는 그밖의 별미들도 함께 맛 볼 수 있어 몇 번을 다시 고려해도
그 집만한 방어전문점은 드물다(교통편, 전화번호 등은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일을 다시 시작했으니 예전처럼 섬에 자주 찾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맘 편하게 기약없이 그곳에
머물 수도 없겠다. 주말을 통하거나 월차를 사용해 2박3일, 길어야 3박4일 내려갈 수 있겠지. 서울은
11월 초부터 이미 겨울이었지만, 섬은 아열대 기후권에 속해 있어 11월 말에도 충분히 따뜻하여
별별 꽃들이 찬란하고, 수풀을 뒤지면 산딸기도 따 먹을 수 있다. 한겨울에도 얼음이 어는 0도 이하로
내려가는 적이 거의 없다. 그 섬은 따뜻하다. 나는 매년 겨울마다 그 섬의 체온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좋은 사람들, 그러니까 프로젝트 NAL 사람들이나 대학친구 J군, K양, A군, 후배 K 부부 등과 같이 며칠
섬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녁에 도착해 고요한 밤바다를 바라보며 더불어
술잔을 부딪히고,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같이 잠들었다가 아침엔 시원한 해장국집에서
머리를 맑히며, 오름과 바다와 숲을 걷다 다시 밤엔 회 한 접시 떠다 놓고 제주술을 마시고, 다시
다음날이면 남들은 모르는 이곳저곳과 섬이 지켜온 음식들을 맛 보다가... 마지막에 공항으로 돌아가기
앞서 그들을 데리고 마라도 횟집에 가고 싶다. 싱싱한 방어회 큰 놈을 서걱서걱 썰어 푸지게 먹이고는
맑은 고소리술 몇 잔을 따라주곤 호기롭게 소리치고 싶다. "제가 낼 테니, 많이 드세요. 술도 음식도
더 시키시구요."

서울에서 올해 첫 방어회를 먹었다. 기대 이상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내 섬 제주에서, 마라도 횟집에 앉아
방어 큰 놈을 다시 맛보고 싶다. 좋은 이들과 함께. 일 때문에, 사정 때문에 미루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내가 필요한 것은 섬의 체온만이 아닌 것 같다.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외로움은 혼자 일 때
일어나는 무엇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 사이에 있을 때 더욱 도드라지는 감정이다.

세상이 자꾸 헛헛해진다. 방어회 한 접시 먹고 별 소리를 다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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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제주시 연동에 자리한 마라도 횟집. 겨울이면 저녁 7시부터는 줄을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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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제주도 산 대(大)방어. 마라도 횟집에서는 하루에 몇 십마리씩 이런 놈들을 해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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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도 횟집 주인장의 날렵한 칼솜씨. 방어회 말고 꼭 맛봐야 할 것은 메뉴판에는 없는 '방어 튀김'이다.
  5천원이면 한 접시를 바로 튀겨서 내오는데...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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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방어회 한 접시. 부위별로 맛 보는 사치를 누릴 수 있다. 한 접시에 올해 1월 가격으로 2만2천원이었다.
  올랐어도 2만5천원 이하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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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에 말아 먹거나 기름장에 찍어먹고, 김에 싸 먹고...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 맛은 보증한다.





* 모든 사진은 KM D5D, 무보정 리사이즈.

2010/11/22 09:48 2010/11/22 09:48

나는 내가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비행기표를 예약하러 항공사 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내 고향은 거기라고
거기였다고
그곳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기억은 재구성된다고 했던가.
인위적인 재구성이 가능하다면
나는 내가 가진 장소에 대한 모든 기억을
그 섬으로 치환해 놓고 싶다.

나는 섬 사람,
도무지 묻어둘 수 없는 선연한 풍경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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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가을 우도에서, KM D5D 무보정 리사이즈.


2010/11/16 11:12 2010/11/16 11:12

지난 여름, 국책연구기관 한 곳에서 전화가 걸려왔더랬어요. 연락을 주신 분은 그곳의 한 본부장님.
제 책을 읽었고, 좋았다면서 자기네가 계간으로 연구논문을 잡지로 내는데, 유일하게 제 글을
외부원고로 싣고 싶으시다며 원고를 부탁하셨지요. 주제는 딱 하나, "'바다'에 관련된 글이면 됩니다."였어요.
잡지 이름은 '해양국토 21'. 전문지라고 보여지구요. 어제 제 글이 실린 가을호를 받아 봤는데
정말 제 글 외에는 모두 논문과 리포트, 이슈를 다룬 책이더군요.

쓴 지 2개월이 넘은 글이에요. 이번호가 특집호로 나오면서 발행이 좀 늦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당분간 원고를 연재키로 했구요. 다음 원고도 지난달에 마감해 보냈습니다. 그 원고는 '몽산포'에 관한 글이에요.

가을호에 실린 원고를 여기에 게재합니다. 매수가 많아 원고가 좀 긴 편입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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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국토21 잡지 표지. 연구지답게 담백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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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꼭지만 컬러입니다. 사진도 많이 실어주셨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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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제 원고만 빼고는 모두 다 논문이에요. ^^; 잡지쪽에서는 처음으로 비논문 원고를 받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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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 식당 등 여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도 함께 실었습니다.



당신이 잊어버린 푸른 도화선

 

- 정원선(‘제주 풍경화저자, noside@empal닷컴)

 

 

여름은 뜨거워야 제맛이다, 라던 직장동료가 있었다. 겨울과 봄, 가을 세 계절 내내 죽 한 그릇 못 얻어먹은 얼굴로 비실비실거리던 그는 매년 5월 말만 되면 환한 얼굴로, 드디어 여름이 온다! 라고 의기양양하게 소리치곤 했다. 그때 우리가 맡은 업무는 포털사이트의 헤드라인 뉴스를 편집하는 것이었는데, 일 특성상 24시간 휴일없이 돌아가야 하는 작업이어서 여름휴가도 팀원간 협의를 통해 결원이 생기지 않게끔 릴레이하듯 날짜를 조정해야 했다. 그때 나는 막 뉴스파트를 책임지게 되어서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던 데다가, 동료들이 앞다퉈 휴가를 먼저 쓰겠다고 주장하는 통에 내 휴가는 맨 끝으로 밀려버리고 말았고, 더군다나 여름이면 항상 체력이 고갈되어 더위를 못 이기고 병든 닭마냥 축축 처지는 형편이라 이래저래 짜증이 솟고 미간이 답답해 딱히 이유도 없이 그가 미워지곤 했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은 원래부터 불공평한 것을.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쳇바퀴를 돌고 무슨 일이라도 터질라치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야근을 감수해야 하는 갑갑한 직장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여름만큼은 직장생활도 할 만 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환경에다, 더위 때문인지 윗분들이건 아랫사람들이건 다들 일찍 퇴근하는 통에 저녁이면 고요한 사무실에서 친한 동료들과 캔맥주를 부딪히면서 한숨 돌리는 재미가 있었던 까닭이다. 부서 동료들은 상하를 막론하고 모두 서른 이쪽저쪽의 연령대여서 다들 격의없이 가깝고 정이 두터웠다. 딱 한 명, 여름을 좋아하던 그 친구만 빼고.

 

지금이야 책을 내고, 원고를 쓰며 살아가는 저자 신세가 됐지만 그때 나는 당시에 하던 일을 평생 잇게 될 줄 알았다. 벤처기업에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정리해 보내는 일부터 시작해, 중급 규모의 검색사이트에서 뉴스를 편집하다 이직을 통해 대기업 포털로 회사를 옮긴 때였다. 계열사를 가진 큰 회사가 주는 장점-적지 않은 연봉과 안정성, 그리고 어디서나 이름을 대면 알아봐 주는 브랜드 가치까지 포함한-에 이곳에 뼈를 묻어야지 까지는 아니어도 가급적 오래 다녀야겠구나 열심히 해야지 하는 기특한 마음이 들던 시절이었다. 전과 다르게 상하관계가 엄정했고, 지켜야 할 수칙이나 예의가 늘어났지만 매달 25일 통장에 찍히는 새로운 숫자와 기업 뱃지를 달고 나가면 주위에서 쳐다봐 주는 야릇한 보람에 취해 힘든 줄 모르고 일에 몰두했다.

 

딱 그때가 내가 제주에 빠져들기 시작한 즈음이기도 하다. 갑자기 불어난 급여와 대기업 답게 복지체계가 좋아 일년에 몇 일 씩 추가로 주어지던 특별휴무로 인해 나는 막 여행에 눈 떠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차를 사고 서울 근교를 드라이브하는 일부터 시작해 움직이는 범위가 차츰 넓어졌다. 강화도, 양수리, 청평, 대천, 속초, 전주, 안면도, 부산, 목포, 통영, 남해주말이나 휴일이면 이 땅의 이곳저곳을 다녔다. 나는 젊었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세상에서 두 번 째로 즐거운 일은 여행을 다녀온 뒤 그 여정과 소감을 꼼꼼히 기록하는 것이었고, 첫 번 째로 행복한 일은 그 다음 여행을 책이나 인터넷 정보를 뒤져 세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이었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자고 그 고장의 음식을 먹고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무지 물리지 않는 근사한 체험이었다.

 

그러다 제주에 가게 됐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항공-호텔-버스여행 패키지로 여행사 가이드를 따라 뻔한 코스를 우르르 몰려다니는 관광이었는데, 모든 일정을 마치고 버스가 호텔에 데려다 준 저녁시간 이후, 멋대로 낯선 거리와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뜻모를 사투리를 써대는 섬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행복했다. 밤이면 돌아와 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낡은 호텔에 머물렀는데, 그때 본 바다는 낮에 관광객들과 몰려다니며 걸었던 그 바다와 완전히 달랐다. 인적이 끊긴 도로와 어두워진 네온사인 너머에서 비로소 가벼워졌다는 듯 부드럽게 밀려왔다 천천히 쓸려나가던 파도, 온통 캄캄한 사위 가운데 아득히 먼 데서 수평선을 비추던 갈칫배의 온화한 불빛, 장난치듯 수면 위로 튀어오르던 이름모를 물고기들, 물결 위에 세밀한 무늬를 새겨넣는 섬 특유의 장난끼 가득한 바람다음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빠듯한 일정이 잡혀있었지만 잠드는 일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져 눈을 감지 못한 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그때 본 바다가 계속 머리 한 켠에서 찰랑거렸다. 좋아하는 이들과 오랜만에 만나 기분좋게 술잔을 부딪힐 때에도 마음 속에는 늘 섬의 바람이 불어왔다. 다시 가야겠구나. 갈 수밖에 없겠구나. 중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뒤로 주말과 휴가를 가릴 것 없이 제주를 찾게 됐다. 매주 월요일이면 나는 늘 항공사 사이트에 들어가 왕복 비행기편 예매 상황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인터넷서점을 통해 제주에 관련된 각종 책들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섬으로 떠날 수 없는 주말이면 도서관을 찾아 섬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온갖 기록물을 읽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제주는 중심이 아닌 변방이었던 터라 그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이 드물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블로그 같은 개인기록이 웹으로 검색되면서 소소하지만 귀중한 섬의 습속과 생활을 보다 생생한 육성으로 찾아볼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됐다.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서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시게 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과는 모두 마찬가지다라고 쓴 적이 있다. 누군가가 특정한 지역을 사랑하게 되는 일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내가 제주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두루두루 다양하게 댈 수 있다. 동그란 자갈돌 사이를 스미면서 차가라락 거리는 알작지의 몽돌바당, 캔디바를 물에 녹여놓은 것 같은 김녕해변의 선명한 초록 물빛, 해가 떨어지는 비양도의 그림자를 받아안는 협재 바다의 보드라운 품, 여름에도 맨 몸으로 맞서기 힘든 중문의 어기찬 물살과 눈부신 흰 빛으로 바다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우도의 서빈백사 해변그러나 그 모든 것은 내가 그저 나중에 갖다 댄 근거에 불과하다. 사랑에 빠지는 데는 이유 같은 건 필요없는 법이니까. 시작에는 여러가지 핑계가 있지만 결과는 모두 마찬가지니까.

 

그리하여 나는 모든 계절에 제주의 곳곳에 서 있게 됐다. 정기적으로 동일한 장소를 찾게 되면 그 곳이 가진 매력과 시간의 변화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꾸준히 공부를 해온 데다 장소에 대한 내력과 세월의 변화를 덧붙여 알아가게 되면서 나는 돌이킬 수 없이 점점 더 섬에 빠져들었다. 모든 바다를 찾아다녔을 뿐 아니라 한라산과 오름과 중산간 마을을 거닐고, 숲과 길과 동물들과 수목들을 찍고 쓰고 공부하고 정리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투리를 익히고 그 섬의 일간신문을 구독했다. 회사에서도, 블로그에서도 제주 매니아로 불리기 시작했다. 제주가 고향인 지인과 대화를 나눌 때도, 예를 들어 보목포구에 자리잡은 자리물회 전문식당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면 내 머리 속에는 자동적으로 그 집 구조와 메뉴판이 그려지고 그 주변 명소들과 가는 길이 더불어 눈 앞에 펼쳐지는 지경이 되었다. 그 지인에게 그간 바뀐 풍경과 새로 연 또다른 식당을 가르쳐주게 될 때도 있었다.

 

햇살이 타오르듯 뜨겁게 내리쬐며 높은 습도와 더불어 불쾌지수를 한움큼 끌어올리는 여름, 도시의 한복판을 거니는 일은 힘들다. 셔츠 안쪽으로 땀이 배이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버스와 지하철은 풀가동한 냉방장치에도 비롯하고 찜통으로 변하기 일쑤다. 별것 아닌 일에도 발칵 신경질이 나고 까닭없이 예민해 진다. 차가운 음료를 입에 물고 있어도 그때 뿐이고, 퇴근 후 맥주 한 잔은 잠깐 시원하지만 잠자리에 들고나면 마실 때 그만큼 더 체온을 덥힌다. 여름은 참 답이 없는 계절이다.

 

그 좋아하는 제주여행도 여름만 되면 난감해 지곤 했다. 일단 휴가철, 방학철인 탓에 비행기편을 구하는 게 한층 더 까다롭게 되고, 교통편은 물론 숙소, 렌트카는 성수기 요금을 책정해 평소보다 2배 이상의 값을 지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그처럼 어렵게 비용과 수고를 감수하고 제주 바다에 닿았더라도 해수욕장의 담합된 바가지요금에 얼굴이 찌푸려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름난 식당은 미어터지며, 서귀포시와 제주시는 서울처럼 교통체증이 일어나고, 조용하던 해변은 새벽 무렵까지 욱신거린다. 그런저런 이유로 여름은 제주를 찾는데 망설임이 드는 계절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름은 제주의 날것 아름다움을 가장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몸에 닿아오는 감람색 바다의 서늘한 물살, 오름 위에서 땀을 식혀주는 바람, 길에서 만나는 새와 곤충의 농익은 연주, 스펙트럼을 최대한 넓혀 사물의 존재감을 더없이 선명하게 밝혀주는 햇살의 장력제주의 여름은 정말 아름답다. 그때서야 나는, 그 직장동료가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를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내 견해를 가지면서도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데에는 명확한 이유는 없어도 반드시 그럴만한 구석이 있는 법이니.

 

여름철 제주의 각별한 즐거움을 경험한 후에 나는 그 직장동료와 조금씩 가까워지게 됐다. 그와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으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로 흥미를 가지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측면이 많았다. 우영창의 우린 서로 다른 것을이라는 詩처럼, 각자 달랐기 때문에 종종 다퉜지만 달랐던 덕택에 서로에게 매료되고 인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와 나는 차츰 절친한 사이로 변했다. 퇴근 후 술잔을 부딪히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이에서, 직장을 옮긴 뒤에도 정기적으로 연락해 만나는 친구로 발전했다. 이제는 내가 제주를 여행할 때 함께 떠나기도 하고, 반대로 그의 여행에 내가 낄 때도 있는 절친한 관계다. 그는 내 약간 과한 농담을 받아들여 주고, 나는 그의 약간 과한 술탐을 이해한다. 어떤 일이건 오래 하게 되면 노하우가 쌓인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각자 우울에 빠졌을 때 상대가 취해야 하는 행동이 뭔지 알고 있으며, 기분좋을 때 추임새를 넣어주는 적절한 시점도 잴 수 있다. 이를테면 여름은 뜨거워야 제맛, 이라고 그가 외치면, 뜨거울 땐 제주 바다 속에 있어야 제맛, 이라고 내가 받아치면 되는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그 변화 속에서 나도 변했다. 아니, 내가 변하고 있는 와중에 세상 역시 변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 다녀야지 하고 생각했던 뉴스 업무를 벗어나 다른 분야로 이직을 했고, 그러던 와중에 승진도 해서 말단 관리직으로 올라섰다. 그 덕분에 시간 여유와 약간의 풍요를 얻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바다가, 섬이, 제주가 목말랐다. 회사 책상에 놓인 모니터 바탕화면에는 늘 바다가 잔잔하게 밀려왔고, 매주 월요일 간부 회의 시간에는 앉은 의자가 섬의 바람으로 들썩거렸다. 섬에 내려가 스텐레스 대접 한가득 담아주는 자리물회가 먹고 싶었다. 소나기 쏟아진 뒤에 한라산에서부터 밀고 내려와 터지는 엉또폭포가 보고 싶었다. 용암이 흘러내려 만든 계곡을 따라 바다에 이르는 안덕계곡과 쇠소깎, 그러니까 불이 낸 물의 길을 거닐고 싶었다. 어느새 과장이 된 여름을 좋아하는 친구와 밤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방파제에서 맥주캔을 부딪히고 싶었다. 창 너머로 바다의 파랑과 숲의 녹색이 출렁이게 두고서는 머리칼을 간질이는 장난기 가득한 바람과 한참을 놀고 싶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세상은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어디에 자신의 닻을 내릴 것인가에 따라 인생이 흘러간다. 나는 후자, 변하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고 나머지 삶을 그에 맞춰 재편했다. 친구가 된 직장동료는 전자, 변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나머지 삶을 거기 맞추며 살고 있다. 선택은 달랐지만 우리는 휴가 때마다 다시 만나고 서로의 가지 않은 길을 확인한다. 거기에 우열은 없고, 각자가 힘든 부분마다 서로의 따뜻한 위로가, 새로이 좋아진 부분에는 기꺼운 북돋움이 더해질 뿐이다. 지금 같은 사이가 오래 지속되길 바라면서. 언젠가 서로의 가족과 아이들까지 함께 데리고 제주바다를 다시금 여행할 수 있었으면 하면서. 싸우거나 토라졌대도 곧 풀어버리고 양보하거나 웃어버릴 수 있기를.

 

올해는 그와 더불어 미리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새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곧 분주해질 그의 사정에 맞춰 좀 이르게 섬을 돌아본 것이다. 흐렸다가 비가 내리고, 다시 개이는 변화무쌍한 사흘 동안의 여행 일정을 추천 코스로 뒤에 남긴다. 바다를 원없이 누리면서, 제철을 맞은 음식과 섬의 별미들을 아우르면서, 산자락과 계곡, 숲을 빠뜨리지 않으면서 거닌 길들이다. 특별히 입장료를 받지 않으면서도 제주만의 특색이 온전히 살아있는 곳들, 여름에 찾으면 가장 좋은 곳들을 망라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와 다닌 곳이니, 지금의 가장 좋은 곳을 보여주고픈 마음을 담은 코스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곳이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비용을 더 들여야만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진짜 자연이나 진정한 맛집은 아니다.

 

서울에 돌아온 지금, 다시 머리 속에는 제주 바다가 출렁인다. 누구에게나 그런 게 있다. 우리가 엉겁결에 잊어버린, 그러나 우리 삶을 한없이 매혹하는 것들이. 한번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인생을 속속들이 태워버릴 수 있는 심지가. 내 경우엔 그것이 바다였고, 제주가 시작이었다. 소중한 휴가, 더위를 피해 당신이 찾는 어느 장소가 예기치 않았으되 피할 수 없는 당신만의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 기대가 없는 인생은 시시하다. 그리고 기대하고 있으며 또한 준비할 수 있는 인생은 황홀하다. 말하자면 이 글은 제주로의 초대장이다. 섬은 당신이 발견하기를 원한다. 인공의 색소 한 점 없이 에머랄드와 샴페인 블루 사이를 일렁이는 푸른 바다를, 매일 밤 하늘 가득히 광활하게 흩뿌려지는 눈부신 별빛을, 오름과 한라산 사이를 굽이치며 가끔 소곤대는 수많은 길들을. 그리고 그 안에서 당신도 몰랐던 당신 자신을 말이다. 권한다, 섬의 생생한 날 것 아름다움을. 지금, 당신에게.

 





2010/10/16 13:20 2010/10/16 13:20